
예전엔 교회목사들을 싫어했다.
요샌 중들을 더 싫어한다.
환경파괴의 1등공신이 중들이기 때문이다.
산에 들때마다 절로 가는 잘 닦여진 아스팔트 길을 보노라면 마음이 착잡하다.
얼마나 많은 신도를 끌어모아 돈을 벌려는 것인지
그 의도가 너무나 뻔하지 않은가!
부처님은 모든 생명을 귀히 여기라 했다.
하지만 길을 닦는 순간 터잡고 있던 들짐승 날짐승은 목숨을 잃는다.
전력은 또 얼마나 많이 쓰는지 산마다 전신줄이 어지럽기 짝이 없다.
속세에서 누리는 것을 산속의 중들도 똑같이 누리자니 그런 것이다.
난 종교를 믿지 않는다.
절대자란 인간이 만들어낸 허상인 까닭이다.
돌아가시는 날까지 종교를 자신의 삶 안으로 끌어들이지 않은 아버지를 존경한다.
나 역시 아버지와 같은 삶을 살 것같다.
내가 조금이나마 종교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인류가
남긴 지적자산 가운데 종교가 차지하고 있는 비중이
아주 크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불교는 차원이 높다.
신이 천지만물을 주관한다는 단순성에서 벗어난 아주 지적인 종교다.
서구 지식인들이 불교에 매료되는 것은 불교의 가르침이 삶의 공허함을 위무해주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사회의 모순은 토건으로 시작해 토건으로 끝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연을 착취하며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내가 쓰는 전기와 휘발유는 누군가의 희생을 담보로 만들어진 것이다.
정말 허투로 써선 안된다.
하지만 부처님의 법을 따른다는 승려란 것들은
성찰이 없다.
제사보다는 젯밥에 눈독을 들이고 있을 뿐이다.
그리하여 오늘도 중들은 산을 밀어 길을 내고 주차장을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중생제도는 사전 속에서나 등장하는 말이 된지
이미 오래다.
사패산 보루로 가는 길은 반이 아스팔트다.
산 중턱에 호암사가 있기 때문이다.
오늘도 나는 어쩔수 없이 아스팔트 길을 걸으며 중들의 탐욕과 무지를 생각한다.
정말로 교회목사보다 중들을 더 싫어하게 될지는 꿈에도 몰랐다.
2017.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