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 전 올렸던 동물기 '호로개'가 추억 돌아보기로 다시 올라온다.
있던 글에 살을 조금 더 붙여본다.
거뭉이 얘기도 넣고 궁예왕 얘기도 넣고.
호로개와 궁예왕은 별 연관 없으나 눈과 관련한 이미지가 겹쳐 계속 쓰게 된다.
동물기
1 호로개
“호로개가 뜨면 눈알이 파 먹힌다.”
그 말은 놀부가 염라대왕 앞에 끌려가는 것만큼이나 무서웠다.
눈알을 파 먹힌채 울고 있는 모습은 끔찍하기 이를데 없었다.
피가 끝도 없이 흘러내렸다.
그럼에도 큰형은 종종 "호로개 떴다~"를 해주었다.
방바닥에 누워 내 두 손을 잡고 발을 배에 대고 들어 올리면 금세 하늘을 날았다.
나는 두 팔을 펼쳐들고 "호로개 떴다~"를 외쳤다.
마치 내가 들녘 저편을 날고 있는 호로개 같았다.
들녘 한 가운데 자리한 외딴집.
누에농사를 끝낸 잠실은 텅 비어 고요했다.
작은 형은 잠실에서 박쥐를 보았다는데 내 눈엔 보이지 않았다.
대신 참새들만 스레트 지붕 위를 날았다.
닭들은 변함없이 모이를 찾아 마당을 끊임없이 왔다갔다 하였다.
어머니는 우리에게 반팔 대신 긴팔로 된 옷을 입혔다.
가을이 왔음을 실감했다.
아닌게 아니라 잠실 앞에 핀 코스모스 역시 하나 둘 잎을 떨구었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가을은 짧았다.
이내 서리가 내리더니 맹강나무잎이 갈색으로 물들어갔다.
학교에서 돌아온 큰형은 산으로 들어가 나무를 하였다.
멀리 순창까지 가 옷을 팔고 돌아온 어머니는 부엌 아궁이에 불을 지폈다.
이내 굴뚝에 연기가 피어올랐다.
가난했지만 그렇다고 끼니를 거르진 않았다.
식구들이 모여 밥을 먹고 국을 먹고 반찬을 먹었다.
또 가끔은 거뭉이가 사이나를 먹고 죽은 꿩을 물어오기도 했다.
그러면 그날은 꿩고기 냄새로 집안이 가득했다.
거뭉이는 집에서 키우는 검은 개였다.
족보에 없는 잡종이지만 머리가 영리해 식구들 모두 사랑해마지 않았다.
거뭉이는 무척이나 빨랐다.
함께 달리면 금세 앞질러 저 멀리 가 있었다.
거뭉이와 함께라면 호로개도 무섭지 않았다.
그날도 나는 동생과 자치기에 여념이 없었다.
땅에 놓인 작은 막대기 귀퉁이를 큰 막대기로 쳐 떠오르게 한 뒤 손목 스냅을 이용하여
최대한 멀리 날아가게 하는 놀이.
딱 하는 소리와 함께 막대 저편으로 호로개를 보았다.
"호로개다~ 엎드려. 뭐해 임마 엎드리지 않고"
"우왓 정말."
땅바닥에 엎드린 채 팔로 머리를 감싸 안은 동생이 말했다.
"성 정말 저게 우리 눈알을 파먹으면 어떡하지?"
"마 그러니까 더 바짝 엎드려야지"
마침 거뭉이는 어디를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아니 호로개 상대가 안될지도 모른다.
그 억센 발로 거뭉이를 짓이긴채 우리의 두 눈을 파먹을지 알 수 없었다.
우리는 호로개가 하늘 저편으로 사라진 뒤에야 겨우 일어 설 수 있었다.
마침 그 때 거뭉이가 고갯길에서 달려와 우리 품에 안겼다.
"예? 호로개가요?"
이튿날 건넌 마을에 볼일이 있어 다녀온 아버지는 말을 이어나갔다.
"그렇다누만. 그러게 조심해야지. 소잃고 외양간 고치면 뭘하남?
곰도 쓰러뜨리는게 호로개여"
어머니는 걱정이 되는지 마당에 있는 닭을 우리로 몰아넣었다.
한 때 어머니가 빠져 죽으려 했던 통싯굴은 바다와 같이 넓었다.
아버지가 도박빚을 져 더이상 살 수 없다고
생각한 어머니는 통싯굴에 이르러 몸을 던지려 했으나 이내 정신을 차렸다.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차마 죽을 순 없었다.
통싯굴은 천변만화한 곳이었다.
여름에는 아이들이 멱을 감으며 고기를 잡고 겨울엔 기러기와 청둥오리가 날아들어 장관을
이루었다.
특히 해가 기울어갈 무렵 바라본 통싯굴은 수초와 물비늘로 인해 더없이 아름다웠다.
사람들은 철새를 반겼다.
특히 기러기는 소식을 전해오는 새로 여겨 옛 사람들은 편지를 기러기 안자를 써서
안서雁書라고 하였다.
설사 반기지 않더라도 싫어하지 않았다.
하지만 호로개는 달랐다.
기러기나 청둥오리와 달리 호로개는 통싯굴대신 동네 어귀 들판으로 날아들었다.
무리를 지어 날개를 접고 서 있거나 앉아 있었다.
한마디로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었다.
"호로개다. 호로개.
올 해는 뉘집 닭을 잡아갈꼬?"
호로개가 하늘 위를 빙빙 돌면 닭들이 부산하다.
놀란 어미닭이 병아리들을 닭장 안으로 밀어 넣었다.
행여 뒤쳐지는 놈이 있으면 부리로 쪼아 밀어 넣었다.
덩달아 사람들 손길도 바쁘다.
닭우리는 싸리를 엮어 만드는데 그 우리를 마당에 세운다.
그냥 세우는 것이 아니라 한 쪽으로 비스듬히 눕혀 세운다.
날아올 방향을 향해 눕히면 아무리 날고기는 호로개라도 닭을 건드릴 수 없다.
황조롱이와 달리 호로개는 수직으로 낙하할 수 없으니 발이 우리에 걸려 어찌할 수 없다는 거다.
호로개가 먹잇감을 사냥하기 위해선 넓은 공간이 확보 되어야만 한다.
그러니까 공간을 내어주지 않으면 안전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피해를 입는 집들이 있었다.
방비를 소홀히 한 탓에 씨암탉이 사라지 병아리들이 사라졌다.
어떤 집에선 키우던 개가 보이질 않았다.
그래서 어른들은 호로개가 날면 이렇게 말하곤 한다.
"애들아 호로개 떴다. 병아리 감춰라.
아니 개도 감추어라"
기류에 몸을 의지하며 날개를 편 호로개.
황선생이 호로개 두어마리가 하늘을 선회하는 것을
보며 말했다.
"저 놈들 고향이 어딘지 아십니까?"
"어디다요?"
"몽골 초원입니다.
겨울이면 영하 몇십도씩 내려가는 추위를 피해
날개의 방향을 남쪽으로 꺾는 거지요.
그 종착점은 여기 한반도고요."
"아이고 역시 선상님은 다르고만요.
그나저나 저한테 꿔간 돈은 언제 깊는다요?"
"음... 거... 학교 선생인 제가 설마 돈을 떼먹겠습니까?
조금만 기다려 보세요."
"믿어도 되지요? 잉?"
"암만요"
사범학교를 나와 면소재지에 있는 국민학교에서 선생 노릇을 하는 황선생은 마을
사람들로부터 신용을 잃은지 오래였다.
노름을 하느라 여기저기 돈을 꿔갔기 때문이다.
황선생은 방학만 되면 노름방에서 일어설 줄 몰랐다.
농한기만 되면 찾아오는 타짜들의 표적이 되어 돈을 털리고야 말았다.
이는 아버지와도 마찬가지여서 황선생 마누라인 감곡댁 역시 속을 끓이며 살았다.
하루는 어머니에게 하소연하기를 통싯굴에 빠져 죽을려는 생각도 했단다.
동병상련의 정일까?
두 여인은 한동안 서로 부둥켜 울었다고 한다.
1979년 우리 식구는 고향 마을을 떠나 서울로 올라왔다.
거뭉이와도 이별을 하였다.
단칸방에서 김제 이모님댁에서 학교를 다니는 누나를 제외한 여섯식구가 살아야했다.
거뭉이를 데려갈 처지가 아니었다.
유난히도 추웠던 그 해 겨울.
나와 동생은 청량리 산동네 단칸방에서 거뭉이를 생각하며 울었다.
"예? 황선생이 세상을 떴다고요?"
그로부터 이십여년이 지난 뒤 어머니는 고향 소식을 들었다.
황선생과 감곡댁이 해를 달리해 죽었다는 것이다.
이듬해 아버지도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는 고향마을과 가까운 곳에 묻혔고 식구들은 때마다 아버지 산소에 가 인사를 드린다.
그리고 시간이 남으면 외딴집을 찾는다.
퇴락할 대로 퇴락한 잠실은 쓰러지기 일보직전이고
바다와 같이 넓던 통싯굴은 작은 저수지에 지나지 않았다.
함께 고향 마을을 돌아보던 동생이 말했다.
"호로개가 없어."
그랬다. 철새철인데도 호로개가 보이지 않았다.
이제 더 이상 우리가 살던 마을을 찾지 않는 듯 했다.
먹을 것이 없기 때문이다.
산엔 먹이가 되는 산토끼와 꿩의 개체수가 줄고 들녘은 과도한 농약살포로
뱀과 쥐를 찾아보기 힘들다.
농경지 수로조차 시멘트로 직강화하니 생명이 깃들 수가 없다.
포유류 최상위 포식자인 호랑이가 멸종위기에 처해있듯 조류 생태계 최상위 포식자인
호로개 또한 개체수가 급감하였다.
2012년 겨울. 나는 차로 경기 북부일대를 돌았다.
호루고루성과 같은 역사 유적과 더불어 비둘기낭과 같은 자연 경관을 돌아보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 가운데 한탄강이 가로지르는 철원은 태봉국의 수도로서 반드시 가봐야 하는 곳이었다.
이미 여러차례 가봤지만 한 번 더 가보기로 하였다.
과연 철원은 한 나라의 수도가 될만한 곳이었다.
그리하여 궁예왕은 저 너른 들판에서 생산되는 쌀을 바탕으로 삼한일통의 위업을
달성하고자 했다.
그는 스스로를 황제라 칭하고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였다.
한반도를 넘어 만주까지 영역을 확대하고자 했다.
하지만 그의 꿈은 물거품이 되었다.
부하로부터 배신을 당한 궁예왕은 철원 들녁을 달리고 달렸다.
그리고 한탄강을 건너 명성산으로 숨어 들었다.
실날같은 희망을 붙들며 재기를 꿈꾸었으리라.
궁예왕의 바램과는 달리 부하들은 군사를 풀어 산을 옥죄었다.
자신의 운이 다했음을 안 궁예왕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한 사람의 비원이 서린 들녁.
나는 그 곳 들녁에서 호로개를 보았다.
수 많은 호로개들이 들녁 위에 서 있었다.
어릴 때 하늘을 날던 그 호로개였다.
동행이 말했다.
축산농가에서 버리는 가축의 시체를 먹고 산다고.
호로개는 멸종위기 야생동물로 지정되었다.
슬프게도 현재 먹잇감이 풍부한 철원 등 일부 지역에만 날아들고 있다.
2021년 눈 수술을 해 잠시 안대를 하였다.
한쪽 눈이 감기니 마치 궁예왕같단 생각이 들었다.
이를 본 동생이 대뜸 호로개에 눈알을 파 먹혔냐고 물었다.
큰형은 호로개가 사투리라면서 표준말로는 검독수리라고 했다.
나는 줄곧 궁예왕을 떠올렸다.
한 쪽 눈이 먼 비운의 왕자!
궁예왕 역시 저 검독수리를 보았겠지.
아마도 그 가 보고자 했던 세상은 한반도를 넘어 만주 아니 검독수리의 고향인 몽골초원으로
이어지지 않았을까 싶었다.
어린 시절 큰 형이 해준 호로개 떴다는 단순한 놀이가 아니다.
어쩌면 좀 더 넓은 세상에 대한 갈망일지도 모른겠단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