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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소설

유언

by 만선생~ 2023. 12. 6.

애정하는 인문시사 유튜브 방송 '더깊이 10' 의 경영이 어렵다.
팬으로서 도움이 되고 싶었다.
그리하여 자발적 시청료를 독려하는 그림을 그렸다.
헌데 뭔가 허전하다.
글을 한두 문장 더한다.
이게 점점 길어져 어느새 한 편의 꽁트가 되었다.

유언

피난민의 아들로 태어난 노인은 평생 빨갱이를 증오했다.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을 적화통일을 시키기 위한 내부 첩자라 굳게 믿었다.
그래서 선거 때마다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국민의 힘에 표를 주었다.
공화당부터 민주정의당, 민주자유당, 새누리당, 자유한국당,그리고 국민의힘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 주류 세력에 대한 그의 지지는 한결 같았다.

빨갱이는 척결의 대상이지 타협의 대상이 아니었다.
피붙이도 예외는 아니었다.
지난 대선 때 손녀 딸이 이재명을 찍었다는 말을 듣고 하늘이 노랬다.
아무리 손녀딸이라 해도 용서할 수 없었다.
그래도 차마 집을 나가란 소리는 하지 못하고 용돈을 끊었다.

손녀 딸로 인한 충격 때문일까?
이후 노인의 건강은 점점 나빠져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손녀 딸이 문병을 왔으나 뒤도 돌아보지않았다.
여든 아홉.
손녀 딸이 아니었더라도 죽음과 가까운 나이였다.
노인은 죽음이 멀지 않음을 느꼈다.

삶은 예정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다.
때론 우연이 역사를 만들기도 한다.
그날은 무슨 일인지 간호사가 실수로 핸드폰을 두고 나갔던 것이다.
간호사는 바쁜 일로 핸드폰을 찾으러 오지 않았다.

"정신머리하고는..."

노인은 핸드폰을 한 쪽으로 옮기려다 무심코 액정 화면을 만지고 말았다.
뜻하지 않게도 유튜브 방송이 재생되었다.
아마도 간호사가 즐겨보는 방송인 듯 했다.
노인은 호기심이 많았다.
간호사가 어떤 방송을 듣는지 궁금해 조용히 핸드폰에 귀를 기울였다.

“이런 쳐죽일...”

노인은 부들부들 떨었다.
얼굴이 울그락 불그락하고 숨소리는 거칠어졌다.
하지만 이성을 잃지는 않았다.
일단 자신의 것이 아니니 아무리 화가나도 핸드폰을 내던져선 안되었다.
노인은 마음을 겨우겨우 진정시켰다.
그리고 빨갱이가 하는 말을 조금만 더 들어보기로 하였다.

아...

노인은 말을 잊었다.
어쩌면 자신이 믿어의심치 않았던 모든 것들이 잘못됐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
이후 노인은 병실에서 자신의 핸드폰으로 날마다 문제의 그 유튜브 방송을 보았다.
이전에 올라와 있던 방송을 찾아보는 것이 하루의 주요 일과였다.

시간이 흘러 석 달뒤 병실에 들어선 간호사가 말했다.

“할아버지 오늘도 더깊이 10을 들으시네.”

“그럼 그럼 내 삶의 복음과도 같은 방송인데 들어야지.
이게 모두 황 간호사 덕이야.”

“할아버지도 별 말씀을. 저로 인해 할아버지께서 새로나시니 너무나 기뻐요”

노인은 지난 세월을 후회하였다.
자신이 기득권세력에 세뇌되어 좀비처럼 말하고 행동해왔다는 사실이 견딜 수 없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노인은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이제라도 역사의 진실을 알게 되었으니 천만 다행이었다.
이러한 진실을 알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간 2찍들이 너무나 불쌍했다.

“그래 자발적 시청료로 2찍들을 구원할 수만 있다면...”

손녀딸에 대한 미움도 안개처럼 사라졌다.
오히려 정신이 바로 박힌 손녀딸이 사랑스러워 견딜 수 없었다.
노인은 부자였다.
손녀딸이 궁핍하지 않게 살 수 있을만큼 유산을 물려주었다.
그리고 나머지 재산은 더깊이 10에 자발적 시청료로 내놓았다.
이후 더깊이 10은 민주진영의 소중한 자산으로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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