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기사 2
선배는 만화를 그만두고 이런저런 일들을 전전하다 운전기사가 되었다.
우리은행 임원을 모시는 일로 급여는 월 180만원이었다.
일 년이 지나선 급여가 200만원으로 올랐다.
하루 여덟시간. 일요일을 뺀 나머지 6일 동안 임원의 발노릇을 했다.
경우에 따라선 일요일에도 임원을 모셨는데 그 땐 특근수당이 붙었다.
업무의 기본은 출퇴근길을 모시는 것이었다.
다음은 미팅장소를 찾아가고 골프 접대를 위해 서울 인근의 컨트리클럽을 다녔다.
접대 시간이 길어지면 자기 일을 볼 수도 있었다.
한번은 한화가 운영하는 용인 남사의 한 골프장에 왔다가 오산에 있는
우리 집에 놀러오기도 했다.
사실 업무라는 게 운전대를 잡는 것 외엔 많지 않았다.
가장 큰 일은 차를 항상 깨끗하게 닦는 것이었고 나머지 시간은 동료들과
탁구를 치며 보냈다.
골프장에선 라운딩이 끝날 때까지 내내 책을 읽었다.
세계 명작 소설부터 자기 계발서까지 두루두루 읽었다고 한다.
기다리는 것도 업무인지라 책읽는 것을 표내지 않기 위해 이사가 차에 오를 때
쯤이면 트렁크에 책을 옮기곤 했단다.
한마디로 무료하지만 편한 직업이었다.
선배는 운전 중 이사와 농담을 많이 주고받았다.
그래서 서로 살아온 이력이며 집안 내력을 손금보듯 다 알게 되었다고 한다.
이사는 기본 심성이 착해 거래처에서 선물을 받으면 선배에게 나누어줄
때가 많았다.
하루는 거래처에서 값비싼 난을 선물 받았는데 집안에 둘 공간이
적었는지 선배에게 주었다고 한다.
그 난을 선배는 다시 내게 주었다.
끝내 죽고 말았지만 나는 몇 년 동안 그 난을 길렀다.
꽃이 피는 걸 보기도 했다.
덕분에 나는 상류층 사람이나 누리는 호사를 잠시 누려보았다.
선배와 이사의 관계가 늘상 좋은 것은 아니었다.
이사는 이따금 선배 속을 뒤집는 말을 하고 했는데 이를테면 이런 말이다.
“야~ 여기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 월급이 얼만 줄 알아?
한 달 내내 잔업 특근 다해도 150이 안된단 말야.
그런데 넌 편안히 놀고 먹으면서 200씩이나 버니 얼마나 좋냐“
선배는 피가 거꾸로 솟는 듯 했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참았다.
자존심 상한다고 때려치우면 갈 곳이 없었다.
이만한 일거리를 찾기 쉽지 않았다.
아무리 갑과 을로 만났지만 그래도 사람사는 사회라 선배의 결혼식날
이사 부부가 식장에 왔다.
나는 한 눈에 선배가 말한 이사란 걸 알아보았다.
여느 하객에 비해 여유가 있어보였다.
억대 연봉에 운전기사가 딸린 차가 제공되고 이곳저곳에서 대접을 받고
사니 당연했다.
신혼임에도 찌들어가는 것은 선배의 얼굴이었다.
선배는 채 2년을 채우지 못하고 기사노릇을 그만 두었다.
남도로 이사를 가 살고 있는 선배는 아직도 경제적으로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 쓸 일이 있으면 항상 먼저 내고야 만다.
주위 사람이 말려도 꼭 그렇게 한다.
알뜰 살뜰 모아 살림을 불리는 것과는 참으로 거리가 먼 인생이다.
선배가 올 여름엔 남도에 있는 바닷가에나 한 번 놀러가자 하니
슬슬 경비 마련이나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