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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작업/1592 진주성

1592 진주성 리뷰

by 만선생~ 2025. 4. 15.

 

교편을 잡고계신 박준규 선생님께서 "1592진주성" 리뷰를 써주셨네요.
리뷰를 쓰기 위해 책을 연달아 두 번 보셨다는.
몽골 침략과 임진왜란 그리고 한국 전쟁이 용의 해에 일어났다는 건
처음 알았네요.
덩달아 박준규 선생님이 용띠라는 것도 알게 됐고요.

 

올해가 용 띠해이다. 갑진년.
12년 전 2012년도 용 띠였다. 바로 임진년.
우리 역사상 임진년에 큰 전쟁이 세 번 있었다.
1232년 임진년에 몽골의 침략으로 개성에서 강화도로 천도했다.
그로부터 360년 후 1592년에 동아시아 국제전쟁으로 임진왜란이
발발했다.
다시 360년이 지난 1952년은 역시 국제전쟁 성격(사실상
제3차세계대전)으로 한국전쟁이 진행 중이었다.
1952년 용 띠 생이 환갑이었던 2012년은 어땠는가.
그리고 다시 용 띠 해를 맞이하여 <1592 진주성> 그래픽노블
작품을 만났다.
지난 금요일에 책을 받고 주말에 꼼꼼히 두 번 읽었다.
읽기 전부터 감상문을 페북에 올릴 생각이었다.
정용연 작가의 전작 <정가네소사>와 <목호의난 :1374제주>,
그리고 <의병장희순>으로부터 깊은 감동을 받았기 때문이다.
(댓글에 2020년에 쓴 <목호의난> 감상문을 달았다)

특히 <목호의 난 : 1374제주>는 14세기 동아시아를 현재의 오염된
역사관(세상을 민족국가로 구분하는 것)이 아닌 지역과 지역민의
삶 입장에서 고립된 제주의 비극을 그린 작품이라 한국만화의
신기원이라고 생각했다.
더구나 1374제주는 1948제주를, 2012년 구럼비바위 폭파를
자연스럽게 수면 위로 올린다.

그런 마음의 배경을 업고 손에 잡은 <1592진주성> 은 그래픽노블이
아닌 그래픽다큐로 다가왔다.
또 한 사람의 충무공, 김시민 장군이 이끈 진주대첩은 임진왜란
3대 대첩 중 하나였다(나머지 행주대첩/한산도대첩)
읽는 도중 인터넷지도를 열어보니, 부산에 상륙 후 육상으로
전라도로 가려면 진주를 지나는 길이 유일하다는 걸 알겠더라.
남으로는 바다이고 북으로는 지리산과 덕유산 자락이 막고 있어
진주를 통과하지 않고 호남 곡창지대로 갈 수 없는 조건이다.

‘왜군’은 반드시 지나야했고, ‘우리’는 반드시 막아야 했다.
1차 진주성전투는 김시민 장군을 중심으로 뭉친 민중의 승리였지만,
2차 진주성 전투에서는 왜군에게 함락됐다.
(<1592진주성>은 1차 진주대첩과 김시민의 사망으로 막을 내린다.
2차 진주성 전투와 성의 함락은 전쟁의 대세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작품은 5년 전 쓰시마의 ‘왜놈’들에게 엄마가 납치된 장영덕을 초반에
배치했다.
영덕은 남장을 한 처녀로, 엄마의 행방을 알기 위해 부산진
일본인마을에 자주 나가고, 일부러 왜말을 익힌다.
임진년 5월에 전쟁이 터지고 영덕도 왜군의 포로가 되어 끌려간다.
익힌 왜말 덕에 왜군의 비밀계략을 알아듣고 김시민 장군에게
왜군 전략을 전달하는 에피소드를 넣었지만 이후 더이상 영덕에
대한 정보 없이 작품은 끝난다.
아마도 <진주성2>로 이어지는 매개 역할을 영덕이 하지 않을까 싶다.

만화의 생명은 무엇보다 그림이다.
그렇다고 스토리가 둘째가 될 수 없다.
스토리의 깊이, 흐름, 맥락이야말로 명작의 조건이다.
<진주성1592>는 정용연 작가가 그림을 그리고, 스토리는
권숯돌 작가가 맡았다.
정용연 작가는 후반 처리에 컴퓨터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모든 컷을
종이에 펜으로 하나하나 그린다.
그의 고백처럼 1년하고도 8개월을 입에 단내가 나도록
그리고 또 그렸다.

그렇지만 <목호의 난 : 제주 1374>과 결이 다르다고 느껴지는 건
스토리 작가와 협업이냐 아니냐에 따른 차이로 보인다.
독자로서 나는 작품을 떠나 16세기 말로 잠시 날아간다.
드론의 고도가 올라갈수록 드론뷰는 더 넓은 세상을 조망하듯이,
나는 시간의 드론을 높이 띄웠다.
20세기가 보이고 이내 19세기와 18세기가 한눈에 들어오고,
17세기를 지나 16세기까지 보이는 높이로 올라갔다.

일본은 전국시대 말(15세기 중반)부터 스페인 포르투갈과 교류를 하며
유럽의 상황을 파악하고 영향을 받았다.
신성로마제국의 균열과 네덜란드 독립전쟁이 민족국가 탄생으로
진행하는 맥락을 알고 있었고, 조총을 수입하고 총기 제조법을
전수받기도 했다.
일본은 토요토미 히데요시에 의해 통일되고, 명나라는 후금에 의해
쇠퇴하면서 동아시아도 당시 유럽의 소용돌이와 마찬가지로
전쟁으로 치닫게 된다.
조선은 16세기로 넘어오면서 중종 반정으로 왕권이 내리막길을
걷다가 선조가 한양을 버리고 의주로 도망감으로써 왕권은 바닥으로
떨어진다.
이 지점에서 정용연 작가의 섬세함이 빛이 난다. 작가는 조선군이든
왜군이든 처참하게 시신이 널부러진 장면을 적나라하게 그렸다.
‘왜군’은 진주성을 지나야했고, ‘우리 편’은 목숨을 바쳐
막아야했지만, ‘왜군’의 갑을병정과 ‘우리 군’의 장삼이사 한 사람
한 사람이 죽으면서도 왜 자신의 목숨을 초개처럼 가볍게
버려야하는지 묻지 못했다.
나는 정용연 작가가 무더기 시신씬을 그림으로써 대신 물었다고
생각한다.
“무엇을 위해 죽고 죽이는가?”
고려 말 임진년에도, 16세기 말 임진년에도, 20세기 중반 임진년에도, 2012년의 임진년에도 달라진 건 없지않은가.
대규모 학살이 전쟁의 명분에 따라 정당화되는 건 누구를 위한 조
작된 정신세계란 말인가.

430년 전에 일본은 조선을 침략했고, 김시민과 이순신 두 충무공은
수많은 일본인을 죽이고 (조선의 피해도 막대했지만) 결국
임진왜란에서 승리했다-
이런 단순한 이야기를 되풀이하려고 <진주성1592>가 2024년에
세상에 나온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30년 후에 병자호란의 처참함을 또 겪은
조선 민초들의 고통은 국제적 성격이었다. 당시의 유럽도,
중앙아시아도, 남아시아도, 대항해시대의 남미도 전쟁의
소용돌이가 동시에 일어났다.
당시 죽어간 수백 수천 만 명의 민초들은 18세기 근대시민혁명과
19세기 제국주의를 거치며 20세기 최악의 전쟁 시기를 거쳐서
오늘날에도 세계 곳곳에서 미사일로 학살은 이어지고 있다.

동아시아 임진년 전쟁은 일제 식민지와 2차세계대전 이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끔찍한 1950년 한국전쟁으로 이어진다.
시좌를 높여 동아시아를 한눈에 내려다본다면 임진왜란과 1950년
한국전쟁은 직접적 연결끈을 가지고 있으며, 아직 한반도는
한국전쟁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아직도 휴전 상태 아니던가)
“차이는 디테일에 있다.”
이 명제가 옳다는 증명을 <진주성1592>가 보여준다.
단순히 400 여 년 전 우리 땅에서 일어난 전쟁의 에피소드가 아니라
무엇이 우리 삶의 방향을 강제하는지, 우리 이전에 이미 디자인된
사회에서 내가 사는 의미를 널부러진 시신들이 묻고 있다.
<목호의 난 : 1374제주>와 함께 <1592진주성>이 역사를 다르게
보는 국민만화로 널리 퍼지길 바란다.
물론 <정가네소사 1,2,3>도 함께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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