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산 고시촌에서
살면서 남의 성을 엿볼 기회는 한번도 없었다.
남들은 모텔방에서 자면 옆방에서 들리는 신음소리에
잠을 못이루었다고 하는데 나는 그런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몇년에 한번꼴로 공원같은 곳에서 남녀가 키스하는 것을 보았을 뿐이다.
그냥 우연잖게.
그제 선배가 살던 고시원에 갔다가 좁디 좁은 창문을 보았다.
바깥 공기를 들이 마실 수 있는 유일한 통로.
좀 답답했다.
한편으론 이만한 창이라도 있어 다행이단 생각이 들었다.
선배는 이삿짐을 싸고 나는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그 때 선배가 말했다.
" 용연아 창문 밖을 봐라. 바깥이 호텔인데 여기서 방안이 훤히 다 보여"
과연 그랬다.
방안이 다 보이는 건 아니지만 일부가 들여다 보였다.
선배가 말하길 창문을 통해 남녀가 관계를 맺는 장면을 많이 보았다고 했다.
볼려고 한게 아니라 시선을 둘 곳이 그 곳밖에 없어 보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 번도 야릇한 느낌을 가져본 적이 없다고 했다.
일하다 돌아오면 몸이 너무나 피곤하여 성적 욕구 따윈 전혀 들지 않더란 것이다.
성적욕구보다 수면욕이 훨씬 더 강하다고 했다.
나는 선배의 말이 너무나 신기하여 창문밖으로 호텔방안을 봤다.
아무도 없었다.
선배가 이삿짐을 싸는동안 몇 번을 더 바라보았지만 풍경이 똑 같았다.
실망스러웠다.
언젠가 이런 스토리를 생각한 적이 있다.
고층건물 유리창을 닦는 한 남자가 유리창을 닦다
우연찮게 내부를 들여다보았는데 아름다운 여성이 쇼파에 앉아 있었다.
아주 매혹적인 여성이었다.
그러다 거실 한쪽에서 다가온 남자와 실강이를 벌이고 남자는 여자를 목졸라 죽인다.
계획한 것은 아니나 격분을 참지 못해 그만 죽이고 만 것이다.
우연찮게 살인현장을 목격한 남자는 다음날 뉴스를 검색해본다.
살인사건을 전하는 뉴스는 없었다.
그 뒷 스토리는 생각을 못했다.
마찬가지로 이 곳에서 살인 현장을 목격한다면?
일본 추리소설 작가 마쓰모토 세이치라면 이 것에 착상하여 재밌는 소설 한 편을
써내려갈테지만 내겐 그런 능력이 없으니 안타까울 수밖에.
나는 어딜가나 살인사건이 일어나는 소년탐정 김전일이나 명탐정 코난이 아니다.
남의 성을 엿볼 기회라곤 한번도 주어지지 않는 무명의 만화가일 뿐이다.
삶이 너무 건조해 오늘은 뭐 신박한 일이 일어나지 않나 기대하며 살아가는.
2023.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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