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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2 경기 남부

굴포천

by 만선생~ 2025. 5. 15.

 

 
 
 
 
 
 
굴포천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입주 첫날인 어제 동료들과 굴포천(掘浦)을 걸었다.
원적산에서 발원해 한강 하구로 흘러드는 20km 길이의 물줄기다.
굴포천에서 만난 풍경은 다양했다.
비록 물은 맑지 않지만 드넓게 펼쳐진 갈대밭과 버드나무를 비롯한 여러 나무들이
푸르름을 더했다.
남생이들이 집단적으로 서식하고 있는 것도 특이점이다.
바위위에 자리잡은 남생이들은 한결같이 꼼짝도 하지 않은채 햇볕을 쬐고 있었다.
잘은 모르지만 습성이 그런 듯 하다.
굴포천의 굴掘은 팠다는 뜻이다.
고려시대 운하를 만들기 위해 땅을 파기 시작했으나
몽골의 침략으로 중단되었고 조선시대 다시 땅을 팠으나 거대한 암석을 만나 실패했다.
당시 기술로는 도저히 뚫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던 것을 이명박 정부 들어 4대강 사업의 일환으로 서해바다와 한강을 잇는
운하를 팠다.
아라뱃길이라 부르는 경인운하다.
효용성이 전혀없는 죽음의 뱃길.
도로가 발달하지 않은 고려와 조선에선 운하가 필요했으나 지금은 무용지물이다.
토건업자의 배만 불려주었을 뿐.
환경파괴의 표본이 되어 길이 남을 것이다.
그럼에도 굴포천 상류는 원형을 유지하며 흐르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랄까?
일본 오사카에 가면 도톤보리라는 운하가 있는데
여기서 보리는 굴掘을 뜻한다.
시가현에 있는 오미하치만시의 하치만보리 역시
에도시대 상인들이 물건을 실어나르기 위해 판 운하다.
이들 모두 평지로 운하를 파기에 용이한 지역이다.
굴포천 상류의 원적산 같은 장애물이 없다.
상업이 발달해 운하를 판 것이 먼저인지 운하를 팠기에 상업이 발달한 것인지 순서를
알 수 없지만 모르지만
일찍부터 상업이 발달한 것은 부러울 뿐이다.
승객 0명의 아라뱃길은 아무 의미가 없으나 고려와 조선시대 굴포천 공사가
성공했더라면 어땠을까?역사가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지나친 억측일 수도 있지만 그런 생각이 든다.
 
2025.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