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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생활

후회

by 만선생~ 2025. 6. 7.

 
 
후회없는 인생이 어디 있겠나?
그 때 공부를 좀 더 열심히 했더라면...
그 때 회사를 계속 다녔더라면...
그 때 여행을 좀 더 다니며 견문을 넓혔더라면...
그 때 그 여자를 잡았더라면...
많고많은 후회 중에 부동산을 제대로 간수하지 못한 후회가 있다.
사업하는 작은형이 90년대말 서울 양재동에 빌라 한 채를 샀더랬다.
드라마에 나옴직한 예쁜 집이었다.
하지만 아엠에프가 터지고 부도가 나면서 집을 팔고 말았다.
한 순간에 서울특별시민에서 경기도민이 된 작은형은 사글세를 살았다.
몇년이 지나 회사를 겨우 궤도에 올려놓은 형은 후회를 하였다.
그 때 그집을 팔지않았더라면...
독하게 맘먹었으면 안팔고 버틸 수도 있었는데...
몇년 사이 양재동 빌라는 값이 몇배로 뛰었다고 한다.
8,90년대 대본소 만화는 대호황이었다.
엄청난 양의 만화가 대본소를 통해 유통됐다.
대본소 작가들은 최대한 작품을 많이 뽑아내기 위해 팀을 만들었다.
스토리와 데셍, 펜터치, 배경을 각기 나누어 작품을 생산했다.
효율을 높이기 위해 스토리 쓰는 사람은 스토리만 쓰고 데셍맨은 뎃셍만 펜터치는
펜터치만 하였다.
책을 한권씩 끝낼 때마다 주머니에 들어오는 돈이 제법 두둑했다.
나보다 두살 위인 선배는 뎃셍맨이었다.
여기저기서 스카웃을 해가는 에이급 데셍맨은 아니었다.
욕심도 없었다.
기를 쓰고 데셍을 하면 돈을 좀 만지겠지만 적당한 선에서 손을 멈추곤 했다.
그럼에도 딱히 돈이 아쉬운 줄 모르고 살았다.
선배는 저금도 하였다.
마침내 집도 샀다.
노원구에 있는 18평형 주택공사 아파트였다.
90년대 말 일본만화가 무차별적으로 들어오고 새로운 오락거리들이
생겨나면서 대본소 호황은 막을 내렸다.
대본소 체제에서 일하던 많은 사람들이 손을 놓아야했다.
선배도 마찬가지였다.
일이 없거나 있어도 단가가 너무나 낮았다.
선배는 결국 아파트를 처분하고 교외로 나가 월세를 살았다.
훗날 선배가 내게 말했다.
신문배달이나 우유배달을 하면서라도 집을 지켜야했다고.
선배가 살던 18평형 아파트는 십년 사이 값이 몇 배로 뛰었다고 한다.
집값이 떨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팔면 손해다.
그럼에도 팔 수밖에 없는 절박한 상황들이 있다.
그리고 모두 후회를 한다.
그 때 좀 더 버틸 걸 하며...
다행히도 지금 작은형과 선배는 팔았던 집들보다
좋은 집에서 살고 있다.
 
202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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