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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생활

안동역에서

by 만선생~ 2025. 6. 13.
처음' 안동역에서'란 노래를 들었을 때 손발이 오그라들었다.
가사가 너무나 유치해서다.
거기다 곡은 뻔하디 뻔한 트로트다.
익히 수없이 들어온 그 메들리...
이런 노래를 받아서 부르고 있는 가수가 안돼 보였다.
운좋게 어쩌다 방송을 탔지만 다시는 부를 일 없는.
나는 가수에 대한 연민의 감정이 들었다.
그런데 참으로 주제넘은 생각이었다.
'안동역에서;가 흘러나오는 거다.
뻔하디 뻔한 트로트 메들리에 손발이 오그라드는 가사의 노래가 말이다.
그리고 안동에 있는 경북 콘텐츠진흥원에선 '안동역에서'를 지역을 알린 대표적인
콘텐츠로 꼽고 있었다.
아닌게 아니라 노래로 인해 안동은 더 유명해졌다.
나는 혼란스러웠다.
내가 잘못된 건지 세상이 잘못된 건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들으려고 한 건 아닌데 안동역서는 자꾸만 내귀에 들려왔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는 증거다.
수준은 그 다음에 논할 일이다.
송대관의 '네박자'가 수준이 높아 많이 불리던가.
대중은 편하고 또 익숙한 걸 찾기 마련이다.
소수 깨어있는 지식인들을 제외하곤 김민기 노래를 듣지않는 것과 같다.
관광 버스 안에서 정태춘 '종로 장마에서' 같은 노래를 부를 일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세뇌다.
세뇌는 반복을 통해 이루어진다.
노래가 그렇다.
'안동역에서'를 거듭 듣다보니 손발이 오그라들지 않았다.
편안하고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나도 곧 '안동역에서'를 흥얼거릴지 모를 일이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누군가 내게 쐐기를 박았다.
"그러고 보니 정작가님. 가수 진성씨하고 이미지가 비슷한 것 같아요"
"예?"
'안동역에서를 부른 가수 진성과 내 이미지가 닮았을
거란 건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
사람이란 참으로 간사한 동물이다.
진성씨와 내 이미지가 비슷하다고 하니 진성씨가 괜찮아 보였다.
사람이 푸근해보였다.
얼마 전에는 우연찮게 진성씨가 출연한 공중파 방송을 보게 되었다.
고생을 참 많이한 사람이었다.
불우한 가정 형편으로 가방끈이 짧은데다 운도 따르지 않았다.
그러다 우연에 우연이 더해져 '안동역에서'를 부르게 되었고 이게 메가 히트를 친 것이었다.
인생역전이다.
진성씨의 성공이 마치 나의 성공인 것처럼 생각되었다..
귀에 익숙하지만 그렇다고 좋아한다고 말할 순 없는 노래 '안동역에서'.
'안동역에서'를 들을 때면 용기가 난다.
나도 어느날 진성씨처럼 어떤 계기로 국민작가가 돼 있는 건 아닐까?
그나저나 진성씨는 알고 있을지 모르겠다.
안동역 아주 가까운 곳에 신라시대 5층 전탑이 있다는 걸.
진성씨는 법흥사지 전탑만큼이나 아름다운 전탑 앞에 서있어 봤을까?
눈이 내리는 밤.
탑돌이를 하고 있는 한 여인.
여인은 폐허가 된 절터에서 한 사내를 기다리고 있다.
이경 무렵 탑에서 만나 안동을 떠나자고 약속한 그 사내...
어느덧 여인의 발목은 눈속 깊이 빠져 들고 있었다.
 
20254.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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