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제 사패산 1보루 가는 길.
등산로 중간에 너럭바위가 있어 쉬곤 하는데
아저씨 두 분이 웃통을 벗은 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인사를 건네자 아저씨들이 간단히 목례를 한다.
국립공원에서 웃통 벗는 일은 금지돼 있지만 날이 날이니 만치 뭐라 할 수도 없고
뒤에서 몰래 사진 한 장을 찎었다.
남자라서 바위에 털썩 눕기도 하고 남자라서 밤늦은 시간 홀로 산행을 하기도 한다.
뉴스 언론에서 기성세대를 비판하는 청년세대를 보며 스스로를 변명한 적이 있다.
“이 봐 난 나이만 좀 먹었을 뿐이야.
기성세대라 해서 누린 건 아무 것도 없어.
부와 명예 따위는 내 인생에서 너무나 멀리 비껴나 있었으니까.
난 그저 일용할 양식을 얻기 위해 건설현장에서 막노동을 했고
형편없는 대우를 받으며 공장을 다녔을 뿐이라고.
하다못해 나이어린 친구에게 심부름 한 번 시킨 적 없다고.“
그럼에도 기성세대로서 책임을 묻는다면 볼멘소리로
이런 소리를 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어쩌라고?”
사실 난 기성세대로서 뿐만 아니라 남자로서 누린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하늘같이 떠받들리며 자란 외아들도 아니고 남자로서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자리에 서 있었던 적도 없다.
대한민국 남자로 태어났다는 이유 하나로 30개월 동안 군에서 뺑이를 쳤을 뿐이다.
난 언제나 여자들의 선택범위에서 벗어나 있었고 그로인해 심한 열패감에
시달리곤 했다.
그래서 지금도 이런 생각이 멈추지 않는다.
“세상의 모든 여자들은 내게 비껴나 있구나”
그런데 산에 올라와보니 남자로서 참 많은 것을 누리고 살았다는 걸 깨달았다.
밤늦은 시간 거리를 마음 놓고 활보했고
공원 벤취에 누워 하염없이 나뭇잎을 바라보았다.
산에선 사람들 눈치를 보지 않고 바위에 누웠다.
여자라면 감히 할 수 없는 일이다.
너럭바위에 웃통을 벗고 수다를 떨고 있는 여성들의 모습을 생각할 수 있는가?
만약 그렇다면 뉴스감이다.
거꾸로 생각하면 저 아저씨들이 뉴스거리는 아니지 않나?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기성세대로서 또 한사람의 남성으로서 누리고
살았던 것들에 대해 생각하는 오늘이다.
2016.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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