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주 송정동에 사는 선배 집에 머물며 가방장사를 만났다.
나와 동갑으로 선배와는 4년 전부터 알고지내는 사이라고 했다.
두 사람은 무척이나 가까워서 집안 대소사는 물론 여자와 잠자리를 할 때
어떤 기술을 사용하고 반응이 어떤지에 대해서도 허물없이 말하였다.
노점상인 그는 감시 카메라를 피하기 위해 차량 번호판을 비닐로 가렸다.
그가 파는 가방은 모두 짝퉁이고 값은 몇 만원을 넘지 않았다.
마침 들고 다니는 가방이 낡아 가방을 하나 사기로 했다.
3만 5천원에 파는 걸 3만원에 주겠다고 한다.
나는 지갑에서 3만원을 꺼내 건네주었다.
선배도 가방이 필요하다며 하나 팔아주었다.
그는 장사 수완이 좋아 지나가는 아줌마가 가격을 물어오면 놓치지 않았다.
어떻게 해서라도 사게 만들었다.
하지만 몇 개를 팔면 더 이상 팔 생각을 하지 않고 숙소로 돌아갔다.
그는 집이 없었다.
모텔 방에서 달세 35만원을 주고 산다는데 방안엔 컴퓨터도 없고
읽을만한 책도 없었다.
컴퓨터는 스마트 폰이 대신했고 책을 읽는 대신 티브이를 보며 소일했다.
취미는 빠징코 비슷한 전자오락실에 가는 것이라고 한다.
그는 독신이었는데 엄청난 여성 편력을 자랑했다.
중학교 때 여자를 처음 사귀었고 고등학교 때부터는 여자와 잠자리를 갖기
시작했다고 한다.
여자와 잠자리를 갖는 건 어렵지 않았단다.
한 번 성공하자 자신감이 생겨 여자에게 접근을 하면 족족 다 넘어왔다고 한다.
실패도 있었지만 성공확률이 더 놓았다.
이삼십대 직장생활을 하면서 동거생활을 반복했고 결혼을 할 뻔도
했었지만 한 여자에 정착하지 못하는 것이 그의 운명이었다.
지금은 사귀고 있는 여자와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 관계를 가진다고 했다.
한편으론 그의 여성 편력이 부러우면서도 정처없이 떠도는 생활이 짠했다.
가정 형편이 불우했던 것도 아니었다.
아버지는 고등학교 교사였고 인품도 모나지 않은 분이었다.
어찌 어찌 살다보니 지금처럼 되었고 딱히 지금의 생활에 불만이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새벽 두시까지 이어진 술자리.
하룻동안 여행이나 같이 다니자고 했더니 귀찮다고 했다.
아마도 여행대신 모텔방에서 티브이를 보거나 전자오락실에서 시간을 보냈으리라.
다다음날 그에게 전화가 왔다.
“어디세요?
“장성 필암서원입니다”
“필암서원요?”
필암서원이 어떤 곳인지 알 길이 없는 그에게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고 다음에 내려오면 또 보자는 말을 하고 끊었다.
옆머리가 하얗던데 염색하란 말을 해야 했을까?
거울을 보니 다행히 내 머리는 염색한지 얼마되지 않아 흰머리가
보이지 않았다.
2017.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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