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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정치, 사회

10.26 박정희

by 만선생~ 2025. 10. 28.
지금으로부터 36년전인 10월 27일 아침.
라디오는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하셨다는 소식을 긴급한 목소리로 전했다.
충격이었다.
두려움에 정신이 아득했고 몸은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듯 했다.
이제 우리나라는 어떻게 되는 거지?
전쟁이 나는 건가?
그래도 학교는 가야했다.
언제나 그렇듯 이슬이 가득 맺힌 풀밭길을 헤치고
가느라 바지가 흠뻑 젖었다.
학교에 가서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하늘이 무너지지도 않았고 북한이 쳐내려오지도 않았다.
선생님은 어제와 마찬가지로 수업을 이어갔다.
뭔가 큰 일이 나야는데 왜이러지?
아무일도 없다는 사실을 좀처럼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집에 돌아오니 아버지가 대통령이 돌아가셨으니 마음을 경건히 하라고 했다.
옛날로 치면 임금이나 마찬가지라고.
잠시 경건한 마음이 들었으나 곧 잊혀졌다.
궁핍한 우리집 살림살이와 상관없이 동생과 들판을 뛰어다니며 놀았다.
땅거미가 밀려오고 어둠이 들판에 가득할 때 나와 동생은
집으로 돌아와 엄마가 차려주는 저녁을 먹었다.
라디오에서 연신 들려오는 대통령 서거 소식...
서거라는 낱말을 처음 듣게 된 1979년 10월 27의
밤은 그렇게 깊어갔다.
영원히 봉인돼야 마땅한 박정희 망령이 한반도 이남 곳곳을 떠돌고 있다.
떠돌고 있을 뿐 아니라 사람의 뇌에 깊숙히 침투해
친일 독재 인권유린 부정부패 역사왜곡의 정당성을
끊임없이 주입시키고 있다.
주권자로서의 정당한 권리를 찬탈해도 불법으로 사람을 린치 감금 고문하고
없는 혐의를 만들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해도 불가피한 것이라고
눈을 감거나 그 행위를 적극 옹호한다.
18년 동안 행정 입법 사법 군사를 장악한 위에 미디어를 통해
끊임없이 세뇌시킨 결과다.
좀비가 되어버린 51.6%의 국민들.
상식이 통하는 사회에서 살고 싶다는 아주 작은 바램조차
갖기 힘든 2015년 10월 27일도 어느새
반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2015.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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