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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생활

신중현 선생의 사인

by 만선생~ 2025. 12. 3.
설경씨는 선배 K의 여자다.
그날 나는 어떤 이유로 설경씨와 신림역 근처 카페에서 차를 마시고 있었다.
세상 여느 여자들처럼 설경씨도 수다쟁이다.
자신의 말을 한도 끝도 없이 이어갔다.
나는 설경씨의 말이 자못 흥미로운 듯 귀를 쫑긋하며 들었다.
아니 들어주었다.
사실은 들어도 그만이고 안들어도 그만인 이야기지만
설경씨의 기분을 맞춰주기 위해 그리하였다.
사실 세상에 정말 쓸모 있는 말이 얼마나 되겠나?
우리가 나누는 대화의 90% 이상은 세상을 살아가는데 아무 쓸모가 없거늘.
하긴 유대감 차원에서 쓸모가 있긴 하다.
어쩌면 쓸모없는 90%의 말들로 인해 인간 세상의 평화가 유지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만약 90%의 쓸데없는 말들을 내뱉지 않는다면 어찌 될까?
스트레스를 견디다 못해 죽고 죽이는 일들이 비일 비재 할 것이다.
그렇게 나는 설경씨의 말을 들어주고 있었다.
그때다.
맞은편 자리에 있는 사람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어딘지 낯이 익다.
아... 그분
한국 락음악의 대부인 신중현선생이었다.
"저~ 신중현 선생님이시죠?"
"네"
"사인 좀 부탁드립니다"
선생은 아주 익숙한 동작으로 내가 건넨 무선 노트에 사인을 했다.
설경씨가 자리에 돌아온 내게 물었다.
"저 할아버지 누군데요?"
"신중현선생이예요"
" 네?"
"모르세요? 아주 유명한 분인데... 거 있잖아요.
이선희가 부른 아름다운 강산 그거 작곡하신 분."
"아..."
나는 무슨 생각에서인지 사인을 설경씨에게 건넸고 그녀는 사인을 가방에 넣었다.
세상의 모든 연인은 크고 작은 이유로 다툰다.
그런데 선배 K와 설경씨는 다툼이 심했다.
설경씨는 선배 K의 무뚝뚝함이 불만이었고 선배 K는 자신을 깔아뭉개는 설경씨의
말투가 거슬렸다.
처음 그들에게 씌었던 콩깍지는 어느덧 다 날아가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보였던 것이다.
얼마 뒤 그들은 헤어졌다.
지지고 볶는 싸움을 마침내 끝을 낸 것이었다
그로부터 1년 쯤 지나 설경씨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사내에서 만난 연하의 남자와 결혼을 한단다.
"축하해주실 거죠?"
"그럼요. 축하합니다"
나는 설경씨 결혼식장에 가지 않았다.
선배 K와의 결혼이 아닌 이상 갈 이유가 없었다.
이후 소식은 자연스레 끊어졌다.
여우처럼 약은 여자니 남자 머리 꼭대기에서 살고 있으리라 짐작만할 뿐...
이이제이 팟캐스트 방송을 듣는데 초대손님이 락그룹 시나위의 리더 신대철이다.
알다시피 신대철은 신중현 선생의 아들..
불현듯 설경씨에게 건넨 사인이 아깝단 생각이 들었다.
왜냐면 그녀는 한국 락음악의 역사에 그닥 관심이 없는 듯 했으니...
언제 혹시라도 신중현 선생을 만나게 된다면 사인을 받아야겠다.
페북 과거의 오늘에 올라온 글입니다.
2014년도에 쓴 글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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