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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생활

기억력

by 만선생~ 2025. 12. 19.

 
 
 
후배가 말하길 내 기억력이 좋단다.
십수년 전 있었던 일을 마치 어제 일처럼 말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섭다고 한다.
돌아보면 날 서운하게 했던 말은 잊혀지지 않는다.
잊어버려야 하는데 생각이 난다.
사람을 보면 날 서운하게 했던 말부터 떠오른다.
잘해준 게 열이라도 그 하나 때문에 저어하는 마음이 생긴다.
인간은 망상의 동물이라는데 왜 나는 날 생채기 냈던 그 한마디 말을 잊지 못할까?
때로는 나의 기억력이 원망스럽기도 하다.
제발 잊자고.
잊어버리자고.
반대의 경우도 있다.
누군가 했던 칭찬의 말도 너무나 또렷이 기억한다.
존재감이 워낙 미미하여 더 그런 것 같다.
열거하면 이렇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담임 선생님은 숙제로 일기를
써오게 했는데 아이들 앞에서 나를 일어나라고 하시었다.
그러면서 내가 썼던 일기를 읽어내려 가시며 이렇게 써야 한다고 말씀을 하시는 것이었다.
나의 속마음을 들킨 것 같은 부끄러움과 더불어 선생님께 칭찬을 들은 것이
기뻐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
만화는 글과 그림의 조합이다.
두 가지를 잘 해야만 작가로서 바로 설 수가 있다.
이십 대 중 후반 매주 만화라는 곳에 단편 만화 두 편을 가져갔다가 거절 당했다.
마침 스승님께서 그 곳에 작품을 연재하고 계셨는데 나중 전화로 편집자의 말을 전했다.
스토리는 좋은데 그림이 딸려 싣지를 않았단다.
스토리가 좋다고?
전혀 뜻밖의 말이어서 놀랐다.
완전한 칭찬은 아니지만 은근 기분이 좋았다.
우리 만화 연대에서 발간하는 월간 '우리만화'에 <정가네소사>를 연재할 때였다.
한 원로 선생님께서 뜻밖의 말씀을 하셨다.
"용연이는 스토리는 완벽한데 그림이 부족해.."
세상에 어떻게 스토리가 완벽할 수 있나?
믿을 수 없는 말이다.
그럼에도 기분은 은근 좋았다.
한번은 동화 작가들과 홍대에서 저녁 식사를 했는데 후배 녀석도 자리를 함께 했다.
후배 녀석은 말빨이 얼마나 좋은지 동화 작가들을 들었다 놓았다를 반복했다.
모두 배를 뒤집으며 웃었다.
어떤 이는 배가 아파 쭈그린 어깨를 펴지 못했다.
후배 녀석은 식사 자리를 자신의 무대로 만든 것이었다.
그에 반해 나는 말 한마디 껴내지 못하고 듣기만 했다.
철저히 관객으로만 존재한 것이다.
그런 와중에 후배 녀석이 믿을 수 없는 말을 하였다.
내 작품을 보고 천부적인 이야기꾼이란다.
뭐?
정말?
그럴 리가?
립서비스겠지만 기분은 좋았다.
그날로부터 십수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가끔 후배 녀석의 말이 귓잔에 맴돈다.
정말 내가 천부적인 이야기꾼이란 말인가?
아니다.
천부적인 이야기꾼이 이렇게 살고 있을 리 만무하지 않은가!
하늘을 바라봐도 별이 보이지 않는다.
별 볼일 없는 삶을 살고 있는 나!
나는 인정 욕구에 시달린다.
인정받고 싶지만 인정을 받지 못하니 풀이 죽는다.
칭찬받고 싶다.
칭찬...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데 후배들은 내게 그림 잘 그린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는다.
놀림조로 '형 그림 잘 그려." 이런 말이나 하고 있다.
그런 와중에 어제 한 페친 분 하고 전화 통화를 했다.
나더러 "목소리 좋으시네요"라고 하신다.
뜻하지 않은 말에 나는 입에 귀에 걸렸다.
얼마 만에 들어보는 칭찬인가!
감격...
아마도 이 칭찬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 귓전을 맴돌 것이다.
고려 인종 때 편찬된 삼국사기 열전 을지문덕 편에는 을지문덕의 사람 됨을 이렇게 일컬었다.
資沈鷙有智數, 兼解屬文
자질이 침착하고 용맹스러우며 지모가 있었고 동시에 글도 지을 줄 알았다.
말 한마디에 풀이 죽고 말 한마디에 어깨가 으쓱해지는 나 .
을지문덕 같은 역사에 남을 위인은 못 되는구나 싶었다.
그래 만화로 조금이나마 인정을 받자.
그게 남들보다 기억력이 조금 더 좋은 나의 삶이다.
 
2025.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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