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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단상

성의

by 만선생~ 2023. 12. 18.
모처럼 힘들게 완성한 원고를 선생님께 보여드리면 선생님은 원고를 대충
한번 넘겨보시면서 "스토리는 괜찮은데 그림이 모자란다"는 말씀을 하셨다.
어디가 어떤지 구체적인 평가를 받고 싶어하는 나로선 참으로 무안한 일이었다.
이후 선생님은 당신이 하고 싶으신 얘기만 계속 하셨고 나는 묵묵히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있을 따름이었다.
선생님께 들고간 원고는 어디에도 쓰이지 못한 채 지금까지 책상 서랍에
조용히 잠들어 있다.
워낙 졸작이라 세상에 다시 나올 일은 없을 것이다.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를 이어주는 건 성의라고 생각한다.
성의있게 편지, 성의있게 싼 선물포장, 성의있게 차린 밥상...
여행지에서 지나가는 행인에게 사진을 부탁했는데 사진을 성의있게
찍어주면 고마운 생각이 든다.
 
성의란 무엇일까?
마음을 다하는 것이다.
선생님에 대한 서운함에서일까?
나는 반면교사로 혹 누군가가 작품을 청해오면 아주 꼼꼼하게 읽는다.
한번으로 부족하면 두번 세번을 본다.
이부분은 개연성이 없고 이 컷은 극의 흐름을 방해하고 이 대사는 상황과
맞지 않다는 걸 체크한 뒤 조심스럽게 나의 의견을 말한다.
의견이 필요없을 땐 최대한 오래 봄으로서 내가 당신의 작품에 관심이
깊다는 걸 보여준다.
꼭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힘들게 작업한 걸 휙휙 넘겨보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 여겨 두번 세 번을 본다.
이렇한 행동은 자연스레 편집자의 눈을 갖게해 작품을 분석하게 되었다.
이 장면이 좀 더 부각됐으면 좋을텐데 아 이건 가독성을 방해하네.
문장은 왜이러나?
주술관계가 전혀 맞지 않잖아.
나는 오지랖 넓게도 여기에 하나하나 토를 달기 시작한다.
성의가 지나쳐 넘어야할 선을 넘어버리는 것이다.
한번은 상대가 원하지 않았는데도 나의 의견을 말하다 공개적으로
망신을 당하기도 했다.
열린 마음으로 나의 의견을 받아들이면 엄청난 질적 변화를 가져올텐데도
어쩔 수 없었다.
받아들이지 못한 것 또한 그의 몫이므로...
작품을 분석하고 평가하기를 좋아하는 나.
생각해보니 작가보다 편집자가 적성에 맞지 않나 싶기도하다.
열과 성을 다해 작품을 읽어내려갈테니 말이다.
하지만 봉변을 당한 이후로 난 더이상 오지랖을 드러내지 않기로 했다.
좋은 소리는 못듣고 괜히 척만 질 뿐이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가니 이제 다른사람 작품을 놓고 이러쿵 저러쿵
떠드는 것도 귀찮다.
오지랖은 오직 나에게만 향해야 할 것 같다.
 
2017.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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