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살아온 이야기
서른이 넘도록 변변한 수입이 없어 옥탑방과 반지하를 전전했다.
서울에선 살 수가 없다싶어 화성시로 이사했다.
보증금 1100에 월 20만원을 내는 낡은 빌라였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이 일어난 장소와 멀지 않았다.
후덜덜....
생각하면 그나마 보증금을 갖고 있었던 건 기적이었다.
이십대 후반 운좋게 약 7개월간 한 학습지 회사의 삽화를 그렸고
학습만화 두 권을 그려 1100을 마련했던 것이다.
부끄럽지만 내 인생에 돈이 가장 잘벌리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그 뒤론 일이 없어 공과금조차 낼 수 없었다.
재능과 근성없음으로 인해 나는 만화를 포기하고 말았다.
이제 생활을 위해 만화 아닌 일을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노가다밖에 없었다.
날마다 버스를 타고 수원역에 있는 인력사무소에 나가 일당잡부로 일했다.
일이 없을 땐 그냥 돌아오곤 하였다.
파견업체에 나가 공장에서도 일했다.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어느날 내가 사는 빌라 뒤로 대단위 아파트단지 공사가 시작되었다.
나는 공사장에 찾아가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한 사람이 내게 설비팀을 소개해 주었다.
정말 재미없는 일이었지만 석달동안 하루도 쉬지않고 일했다.
목표는 오로지 하나.
자가 운전자가 되어 차를 몰아보는 것이었다.
중고차 시장에서 360만원짜리 마티즈를 샀다.
보험료로 80정도를 줬던 거 같다.
차가 너무나 갖고 싶었고
차를 갖고 있어야 나의 존재가 증명될 거 같았다.
이래 저래 돈을 조금씩 모으기 시작하여 내 총자산은1500만원이 되었다.
그 때 작은 형수님이 뜻하지 않은 말을 했다.
아파트를 사라는 것이다.
아파트라니.
내겐 정말이지 꿈같은 일이었다.
말도 안된다 생각했지만 일단 알아는 보았다.
오산 변두리에 18평형 아파트가 4200 했다.
일단 결심이 서자 바빠졌다.
집을 산다고 하자 작은형이 400을 주었고 어머니가 동생월급을 받아
모으고 있던 800을 꿔줬다.
은행에선 2200을 대출받았다.
취득세와 복비를 내고 이사비용을 제하자 남는 돈이 하나도 없었다.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걸 동원해 집을 산 것이었다.
살던 사람이 내게 열쇠를 건네주며 말했다.
이제 댁네가 주인이예요.
나는 믿기지 않았다.
세들어 살기위해 집주인에게 열쇠를 건네받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서류엔 분명히 내 이름이 등기돼 있었다.
논밭이 훤히 바라다보이는 집.
이곳에서 10년을 살았다.
동생에게 꿨던 800을 갚았고 은행에서 빌린돈 1200을 갚아 1000만원이 빚으로
남았다.
그 사이 집은 4200에서 8000이 되었다.
물가상승률을 계산하더라도 일정이상의 시세차익을 얻게 된 것이다.
시세차익을 노린 건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그리 되었다.
들으니 친구녀석은 1억 3천 주고 산 집이 1년사이 2억 넘게 거래된다고 했다.
한마디로 부동산 광풍의 시대였다.
10년.
나는 살고있는 곳이 지겨웠다.
고민 끝에 오산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다음 행선지는 의정부였고 살던 집보다 방이 두개 더 있는 집으로 이사했다.
대출을 최대한으로 받아서.
친구는 무모한 결정이라며 걱정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2021.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