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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4 전라북도

김제 부용 백구금융조합

by 만선생~ 2024. 1. 16.

 
 
살고있는 곳을 떠나 다른 곳에가보싶은 열망은 나뿐 아니었나보다.
와룡역 앞 하랭이에 살던 아이들도 그랬다.
누가 제안을 했는지 모르지만 우리는 부용에 가보기로 했다.
간이역인 와룡역에서 익산쪽으로 한정거장 떨어진 간이역이 부용역이다.
와룡을 떠나기전 아이들은 겁을 단단히 먹었다.
부용 아이들의 텃세가 장난 아닐거란 것이다.
 
나도 겁이 나긴 마찬가지였다.
부용으로 가는 철길을 걷는 내내 부용 아이들에게 얻어맞는 상상을 했다.
길을 떠난지 한시간 쯤 지났나보다.
부용역에 도착했지만 부용 아이들은 보이지 않았다.
이따금 보이는 어른들은 무심히 지나갈 뿐이었다.
우릴 건드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우리가 그토록 궁금해하던 부용은 와룡과는 확실히 달랐다.
좋은집들이 많았다.
담장높은 저 집안에 들어가 살아보고 싶었다.
우리들은 먹을 것을 싸들고 오지 않았다.
돈도 없었다.
혹시라도 부용 아이들이 나타나 텃세를 부릴까 싶어 서둘로 발걸음을 돌렸다.
와룡으로 향하는 철로가 햇볕을 받아 뜨거웠다.
 
그로부터 40여년이 지난 2022년1월.
남도여행의 마지막 여정으로 김제시내에서 하룻밤을
잔 나는 김제 곳곳을 돌아보고 부용역에 도착했다.
걸어선 한시간이 걸리지만 차로는 금방이다.
화려했던 부용역앞 거리는 쓸쓸함만 감돌았다.
부용역은 폐역된지 오래이고 일본인들이 살다
남기고간 적산가옥들은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아무리 영원한 것은 없다해도 김제의 퇴락은 놀라운 것이었다.
지금은 한참 때 인구의 3분의1도 안된다.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여기선 해먹고 살게 없다이다.
쌀이 산업의 중심이었을 때 김제는 번화했다.
특히 일제 강점기엔 일제가 수탈한 쌀을 실어나르기 위해 부용일대를 키웠다.
이때 들어선 대표적 건물이 백구 금융조합이다.
직원이 많을 땐 22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조선인들의 피와 땀으로 얼룩졌지만 건물 자체는 이를데없이 아름답다.
수치스럽지만 역시 보존해야할 문화유산이다.
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건 당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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