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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간절함

by 만선생~ 2024. 3. 22.
간절함
작가에게 독서는 필요 조건이긴해도 필요 충분 조건은 아닌 것같다.
주위에 엄청난 독서량을 자랑하는 이들이 몇 있었다.
문학부터 사회과학까지 내 독서량과는 비교가 안되었다.
독서량에 비례해 말들도 참 잘했다.
그들의 말을 듣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주눅이 들었다.
나는 왜 이거밖에 안되는가 하는 자괴감에 어깨가 펴지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그들 중 만화 작가로 자리를 잡은 이들은 하나도 없다.
아니 데뷔조차 못하고 자취를 감추었다.
무엇을 하며 살고 있는 지는 모른다.
경제적으로 부유하게 잘 살 수도 있고 한 세상 좁다하며 지구촌
곳곳을 누비며 살 수도 있다.
하지만 확실한 건 그들이 창작 일선에 서 있지 않다는 거다.
독서.
중요하다.
책을 통해 내가 경험하지 못한 걸 경험하게 되고 알지 못했던 걸 알게된다.
뿐만 아니라 느끼지 못했던 걸 느끼게 된다.
책을 통해 생각의 범위가 한 층 넓어진다.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를 뛰어넘어 다른 차원의 삶을 살 수가 있다.
자신의 삶을 확장시키는데 책만큼 가성비가 좋은 것도 없다.
그런데 창작은 다르다.
아무리 책을 많이 읽어도 나오지 않을 사람은 나오지 않는다.
인풋이 있었다고 반드시 아웃풋이 있는 건 아니다.
표현하고자 하는 간절함이 있어야한다.
반드시 쓰고 싶은 어떤 내용과 반드시 그려야 할 어떤 그림이 있어야 한다.
그 간절함이 없으면 만권독서도 별무소용이다.
적어도 창작에 관해서는 그렇다.
고졸 학력에 가진 것은 쥐뿔도 없던 나.
용모 또한 변변치 않아 이성으로부터 눈길 한 번 건네받은 적이 없다.
관심을 보였던 이성은 모두 날 외면하였다.
나는 세상으로부터 인정받고 싶었다.
내가 살다간 자취를 자그나마 세상 어딘가에 남기고 싶었다.
그 간절함이 7년에 걸쳐 우리 식구들 이야기를 그리게 하였다.
첫 책인 "정가네소사"는 그렇게 나왔다.
그 때가 나이 마흔 다섯이었다.
책을 많이 읽는 것 중요하다.
인풋이 있어야 아웃 풋이 있다는 말도 맞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간절함이다.
비록 책을 몇 권 읽지 않았을지라도 간절함이 있으면 뭔가를 쓰고
그릴 수 있다.
반드시 해야할 어떤 이야기.
반드시 그려야할 어떤 그림.
나는 죽는 날까지 반드시 하고싶은 이야기가 많은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
그리고 지금은 반드시 그려야할 이야기들이 책상 서랍에 있다.
아마도 이 이야기들을 그리려면 족히 5년은 걸릴 테다.
그 뒤는 모른다.
그 때도 반드시 해야할 이야기가 생기면 그릴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손을 놓을 것이다.
그냥 감상자로만 살아갈테다.
애써 창작을 하지 않아도 되니 그 편이 오히려 나을지도 모른다.
책을 어마어마하게 많이 읽었던 그 이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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