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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해외

교토 마루야마 공원

by 만선생~ 2024. 3. 23.

 
교토 마루야마 공원
어린 시절 밀폐된 공간을 좋아해 옷장 속에 들어가곤 했다.
옷장 뿐 아니라 책상 밑으로도 들어갔다.
구석진 곳에 몸을 웅크리고 있으면 그렇게 편하고 좋았다.
아마도 원시시대 방어기제가 DNA로 전해져 내려오는 것은 아닌가 싶다.
아무도 눈에 안 띄는 곳!
그 곳은 적들로부터 안전하니까.
지금도 밀폐된 공간에 있으면 마음이 편하다.
그래서 종종 사방이 막혀있는 차 안에서 시간을 보내곤 한다.
몇 년 전 일본 교토에 여행을 갔을 때다.
유명 관광지인 기온의 야사카신사八坂神社를 둘러 보고 발길 닿는 대로
걷기 시작했다.
안내판을 보니 마루야마(円山)공원이라고 쓰여 있었다.
미로처럼 이어지는 숲 속 길.
그 안에 들어앉은 일본 전통가옥들이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천년의 수도 교토'라는 수식어가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나는 일본어를 몰랐다.
'나는 한국인이다'의 와따시와 강코쿠진데스와 인사 말 정도가 내가 아는
일본어의 전부였다.
영어는 '나는 영어를 할 수 없다'의 I can not speak English와 '시간은 몇 시니?'
‘어느 나라에서 왔니?’ 따위의 영어 밖에 할 줄 몰랐다.
가까운 이웃 나라이긴 해도 여긴 외국이었다.
그래서 길을 잃고 숙소로 돌아가지 못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마음
한 곳에 자리했다.
만약 지갑을 잃어버리기라도 하는 날엔 국제 미아가 될 터였다.
그럼에도 무언가에 빨려들듯 한 걸음 한 걸음 앞을 향해 걸어 나갔다.
오래된 집들과 오래된 나무들.
집들이 하나같이 그림 같았다.
그리고 길을 걷는 동안 지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개 짖는 소리라도 들리려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말 그대로 적막 그 자체였다.
아니 평화롭다는 말이 맞다.
얼마 쯤 걸었을까?
나무로 둘러싸인 예스러운 집 앞에서 발길을 멈추었다.
믿기지 않게도 대문은 열려 있었다.
'들어가도 되나?'
호기심에 조심조심 발길을 내 디뎠다.
누가 나타나 뭐라 그러면 "Sorry"를 연발하며 뒤로 물러날 터였다.
그러나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다.
쥐죽은 듯 조용했다.
오십여보 걸었나보다.
이름 모를 나무들 속에 그림처럼 들어서있는 초가집이 보였다.
'초가 삼 칸' 할 때 한 칸 정도 되는 작은 집이었다.
정자라고 해야 할까?
종이로 된 미닫이 창문 안에서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창문 앞으론 마루가 있어 두 사람 정도 걸터앉아도 될 것 같았다.
방 안에선 두 사람내지 세 사람 정도가 앉아 차를 마시지 않을까 싶었다.
몸을 눕혀 잠도 잘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정말이지 아늑한 공간이다.
어릴 때부터 꿈꿔오던 그런 공간 말이다.
더 가까이 다가가 구경을 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조용히 들어왔던 대문을 통해 집을 나섰다.
저런 집에서 생활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일본사람이라고 다 저런 호사를 누리며 살 것 같지는 않았다.
조상 대대로 교토에서 터 잡고 살아온 토박이거나 전문 직업인 아니면
사업에 성공한 사람일 것이다.
이런 집을 일컬어 일본 말로 뭐라 하는지 모르겠다.
만약 영업을 하는 곳이라면 세를 내어 한동안 머무르며 생활을 해보고 싶었다.
성냥 곽 같은 아파트에서 20년 넘게 살아온 사람으로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긴 어릴 때부터 그랬다.
이런 집을 보면 이런 집에서 살고 싶고
저런 집을 보면 저런 집에서 살고 싶었다.
멋진 집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늘 하며 지냈다.
교토에서 자석에 이끌리듯 찾아갔던 집도 그런 집 가운데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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