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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조선족 청년 홍창

by 만선생~ 2023. 10. 23.
형의 중국 현지 직원은 조선족으로 스물한살이었다.
스물여덟살의 한족인 아츠와 함께 광조우에 있는 공장을 운영관리했다.
아츠는 광조우에서 4년제 대학을 나와 영어도 곧잘 했는데 심성이 착한 사람이었다.
성실했지만 수완이 좋단 생각이 들진 않았다.
그에 비해 조선족 직원 홍창은 달랐다.
홍창은 길림성 연변 출신으로 광조우로 와 일을 했는데
한마디로 애 늙은이었다.
거래처 사람을 만나면 아츠보다 일곱살 아래인 홍창이 나서 상대했다.
상대도 아츠보다 홍창을 대화상대로 여겼다.
나이 지긋한 사장과 만나 일대일로 딜을 했고 딜이 끝난 뒤엔 술집에서
접대를 받았다.
3자인 나로선 거래 내용을 알 수없지만 형은 이런 홍창을 두고 애늙은이라고 했다.
기실 홍창은 열혈 민족주의자였다.
조선사람이란 자부심으로 똘똘 뭉쳐있었고 연변엔 장래를 약속한 여자친구가 있었다.
그의 부모도 한족여자는 절대 안된다 말했다고 한다.
그런 홍창이 흔들렸다.
광조우에 와 한족 여자를 만난 것이다.
한족 여자의 이름은 메이.
뛰어난 미인은 아니지만 남자라면 누구나 호감을 가질 얼굴이었다.
무엇보다 행동거지가 조신하고 헌신적이었다.
홍창과 함께있는 메이를 보노라면 메이가 얼마나 홍창을 사랑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남자가 간과 뇌를 내어 놓으라면 금방이라도 내어 놓을 것 같았다.
자명고를 찢은 낙랑공주의 마음이 메이를 보며 이해가 됐다.
홍창은 메이와 함께 있으면 녹아내린다고 했다.
세상 어느 남자가 그렇지 않겠는가!
하지만 홍창은 여자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지는 남자가 아니었다.
한번도 여자의 마음을 사기위해 매달린 적이 없다고 했다.
항상 여자가 먼저 사랑을 고백해왔고 메이도 마찬가지였다.
1년뒤 형은 광조우에서 공장을 철수 중국 내륙 깊은 곳으로 옮겼고 이후
홍창의 소식을 모른다.
메이와의 관계도 알 수 없다.
스물한살이라곤 도저히 믿기지 않게 노회했던 홍창!
학벌을 떠나 내가 만난 청년 중 가장 뛰어난 사람이 홍창이었다.
제주 4.3 때 스무다섯 나이로 산사람을 대표해 사령관 김익렬과 협상을 벌이던
김달삼이 이랬을까?
그로부터 14년이 흐른 지금 홍창의 소식을 혹이나 알까싶어 페북으로 검색해봤지만
홍창은 없었다.
어떻게 살고 있을까?
궁금하다.
(사진은 광조우 주강에서 찍은 홍창과 아츠. 왼쪽이 홍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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