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만화 단상

도시의 파파라기

by 만선생~ 2024. 6. 5.
 
당대엔 알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영화 필름이 그렇다.
당대 상영 되었던 필름이 남아있지 않아 그 기원을 알 수가 없다.
부침이 심했던 한국은 더 그런 것 같다.
만화 역시 마찬가지다.
한국 만화의 역사를 증명해줄 작품들이 남아있지 않다.
만화의 사회적 위치가 낮다보니 원고를 보관한다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
원고는 출판과 함께 쓰레기통으로 향하였다.
책도 아주 소수만 남아 만화 박물관에 가야 겨우 볼 수가 있다.
이는 한국 대본소 만화가 활황이던 80년대까지 이어진다.
심지어 2000년 무렵 도서대여점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일당백"(곽원일)이란
작품도 원고가 남아 있지 않단다.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1986년 대본소를 통해 발표된 기업만화 "도시의 파라라기"는 인생 만화라고
불릴만큼 내게 큰 영향을 주었다.
나는 도시의 파파라기에 독자란 투고를 하였고 내 그림이 독자란을
통해 선보였다.
그 때의 감격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나는 작가에게 편지를 썼고 작가는 답장을 해주었다.
급기야 나는 고등학생 신분으로 작가의 작업실을 찾아가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안세희(본명 안춘회) 선생을 뵈었던 것이다.
안세희 선생은 도시의 파파라기 이후 조남기란 필명으로 "청춘비망록"을
비롯한 액션 극화를 발표하여 히트작가가 되었다.
하지만 선생은 관리를 잘 하지 못해 돈을 벌기는 커녕 빚만 졌다고 한다.
일생 최고의 기회를 날려버린 것이다.
그 기세로 관리만 똑바로 잘했으면 빌딩을 올렸으리라.
더욱 안타까운 것은 원고가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는 것이다.
책 또한 보관을 하지 않으셨단다.
그래서 남아있는 책이 한 권도 없다.
인터넷을 아무리 검색해도 "도시의 파파라기"가 나오지 않는다.
나는 "도시의 파파라기"를 몇 권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만화를 포기하며 내가 가진 모든 만화책을 버리고 말았다.
그 안엔 "도시의 파파라기"도 포함되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아쉽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그 흔적을 찾았다.
스물 다섯살 무렵 오류동에서 작업실 생활을 할 때 찍은 한 장의 사진.
책꽂이 안에 "도시의 파파라기"가 꽂혀있는 것이다.
이현세 作 안춘회 畵로 발표되어 이현세만 보이는...
(이현세는 책판매를 위해 이름을 빌려주었다.)
페친인 조성계 작가는 "도시의 파파라기"에 반해 만화계에 입문했다고 한다.
조성계 작가 뿐 아니라 적잖은 만화가들의 로망이 "도시의 파파라기"란
작품이었다.
만약 시간을 거슬러 만화를 포기하는 순간으로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독자란에 내 그림이 실린 "도시의 파파라기"만큼은 꼭 챙겼을테데...
다행히도 난 비록 발표한 작품 수(미발표작 포함) 가
얼마 안되지만 원고는 온전히 다 보관하고 있다.
내 땀이 진하게 배인 원고를 버릴 수가 없었다.
그럼 "도시의 파파라기"는 어디 꽃혀있을까?
칼라박스 중앙 까만 바탕에 빨간 글씨가 써있는 책이 "도시의 파파라기"다.
파파라기는 흑인들이 뛰어난 사람을 일컫는 말이란다.
 
 
아래는 곽원일 작가님 댓글 

도시의 파파라기 당시의 문하생들에게는 필수 도서였죠.
장태산 선생님의 '귀문도'(전3권)는 중학교 때 나왔는데, 내 혼을 빼 놨어요.
그래서 중2 여름방학 때 연습장에 1권을 그대로 뺐겼습니다.
이현세 선생님의 '공포의 외인구단'(전30권)은 내가 고등학교때 나왔는데, 술 먹고
담배 피고 패싸움 하고 댕기느라고 한참 후에 봤는데, 대단한 작품이었어요.
고교 졸업하고 문하생 시절에는 안춘회 선생님의 '도시의 파파라기'를 사서
보지 않을 수가 없었죠.
뎃생력이 최고였어요.
난 내 의지로 만화를 그만두고 싶지 않았는데, 우리 하나님이 강권적으로 불러서
어쩔수 없이 펜을 내려놓고 공부했어요. 덕분에 일본유학까지 가봤네요.
항상 만화를 그리고 싶었죠. 이제 때가 된거 같아요.
한국만화판을 그 분들 못지 않게 작품으로 흔들어 놓고 싶네요.^^

'만화 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찬휘 작가 북펀딩  (1) 2024.06.05
장례식장에서 후배와 나눈 대화  (0) 2024.04.15
고유성 로보트킹  (0) 2024.04.13
학습만화 시장의 몰락  (0) 2024.04.04
이희재 '나 어릴 적에'  (0) 2024.03.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