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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단상

지우개

by 만선생~ 2024. 1. 17.

당연히 갖추고 있어야 할 물건이 없어 당황할 때가 많다.
식칼없는 주방장을 상상할 수 있는가?
대패없는 대목장을 상상할 수 있는가?
마찬가지로 펜과 연필 잉크 만화용지를 가지고 있지 않는 만화가는 상상할 수 없다.
도구야말로 그 사람이 무슨 일을 하는지 말해주는 알파요 오메가인 것이다.
펜대 펜촉 연필 지우개 만화용지 잉크...
고백하자면 만화가로서 갖추어야 할 물건이 없을 때가 참 많다.
그만큼 작업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만화를 완전 포기하지 않는 한 도구는 일단 충분히 갖추어
놓고 있어야 한다.
언제 어느 때 의뢰가 들어와 작업을 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만화가는 의뢰가 들어오지 않아도 기본적으로
자기 작업을 하고 있어야 한다.)
며칠 전부터 지우개가 하나밖에 없는 것이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다.
그래서 수락산 다녀오는 길에 창동 모닝글로리에 들렀는데
푸석푸석 부서지는 것밖에 없었다.
내가 찾고 있는 지금 쓰고 있는 화랑 소프트점보.
너무 딱딱하지도 무르지도 않고 손에 착 감겨 잘 지워지는 그 지우개가 안보이는 것이다.
할 수없이 그냥 나오기가 뭣해 쓰지도 않을 지우개를 하나 샀다.
오늘
작업을 이유로 하루 종일 집에만 있다가 운동도 좀 할 겸 지우개를 사러 가까운
모닝글로리에 갔더니 상황이 그 때와 똑같았다.
역시 그냥 나오기 뭣해 쓰지도 않을 지우개 하나를 샀다.
할 수없이 이사올 때 집을 알선해주었던 부동산 옆에 있는 문방구로 갔다.
내가 찾는 지우개가 있었다.
하나에 300원. 다섯개를 샀다.
부자가 된 기분이었다.
언제 이 지우개가 다 닳아 없어질까?
모르긴해도 아주 오래 걸릴 것 같다.
만약 빨리 없어진다해도 그건 닳아서가 아니라 가지고 다니다
잃어버려서가 아닐까?
어쨌듣 지우개가 빨리 닳아 없어졌으면 좋겠다.
그만큼 작업결과물도 쌓여갈테니...
(요즘은 신티크가 대세라 모니터상에서 지우개질을 하더라만)
올해 나의 캐치 프레이즈!
지우개와 친해지자.
지우개똥이 쌓인만큼 댓가는 달다.

20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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