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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비루함

by 만선생~ 2024. 6. 29.
우리 역사에 망국의 책임을 지고 죽은 왕은 없었다.
조선의 마지막 임금 고종과 순종은 이왕전하란 이름으로
불리며 비루한 목숨을 이어갔다.
중국에선 단 한명의 황제가 망국의 책임을 지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명나라 마지막 황제인 숭정제.
조선의 유학자들은 명이 망한지 200년이 지나서도 숭정연호를 고집했다.
정신 병리학으로밖에 설명할 수밖에 없는 지극한 사대주의다.
트럼프가 격노했다는 누군가 흘려 쓴 기사 하나를 가지고 벌떼처럼 일어나
덤비는 자유한국당과 닮았다.
우리입장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입장에서 우리를 바라본다.
미국인보다 미국의 이익을 강도 높게 대변한다.
조선의 사대부들은 명나라 사람보다 더 명나라의 입장에서
말하고 행동했다.
명나라에선 아무 문제 삼지 않는데 오히려 조선에서 문제가
되었다.
중국에선 반청복명의 구호가 오래가지 않았다.
새왕조 청나라가 들어서 민중들의 삶이 더 좋아진 탓이다.
그럼에도 조선의 사대부들은 청을 오랑캐로 여기고 스스로를 명나라를
대신한 존재로 생각했다.
소중화 사상이 그 것이다.
명나라가 망했으니 조선이 세상의 중심인 것이다.
21세기 세상의 중심은 어디일까?
내 발 디딛는 곳이 세상의 중심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태평양 건너 유일무이한 초강대국 미국이 세상의 중심이다.
미국을 중심으로 세상이 돈다.
조선이 명나라의 제후국이었다면 한반도 남쪽의 대한민국은
미국 작전 통제권아래 있다.
한반도 남쪽은 검은 머리 미국인들로 넘쳐난다.
한국을 미국의 51개 주 가운데 하나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이들도 많다.
대형교회 집회에 가보면 우리가 미국의 한 개 주가 아닌지 착각이 들 정도다.
집회 참가자들에겐 트럼프가 대한민국 대통령에 우선한다.
사실 조선의 사대부들에게 명나라에 대한 의리는 이해할 만한 구석이 있다.
그들 세계관에 따르면 명나라 황제는 시간과 공간을 지배하는 절대 권력자다.
일차적으로 조선의 왕이 충성의 대상이지만 근원적으로는 명나라 황제가
충성의 대상이다.
숭정제는 기울어가는 배에 올라탄 향해사였다.
침몰 직전의 배를 온전히 운항하지 못했다고 책임을 묻는 건 너무나도 가혹하다.
그럼에도 그는 죽음으로 자신의 책무를 다했다.
어쩌면 이같은 황제의 태도가 조선의 사대부들로 하여금 숭정연호를 더욱
고집하게 했을지도 모르겠다.
조선의 마지막 임금인 고종과 순종이 비루한 삶을 이어갔듯이 절대권력을
휘두르다 쫓겨난 이승만도 비루한 삶을 이어가다 죽음을 맞이했다.
헌정을 유린하고 국민을 총칼로 짓밟은 전두환 노태우는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기는 커녕 온갖 변명을 일삼으며 호화생활을 영위한다.
열불이 터지지만 심판할 방법이 없다.
국정을 농단하고 기업으로부터 뇌물을 받다 파면당한 박근혜는 자신의
잘못을 전혀 뉘우치지 않는다 .
우리 역사에서 최고 권력자가 책임을 지고 목숨을 끊은 경우는
노무현 대통령 한 사람 뿐이었다.
수많은 적들에 둘러쌓여 공격을 받다 끝내 부엉이 바위 아래 몸을 던졌다.
그는 영혼이 너무나 깨끗해 작은 허물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의 희생 위에 국민들은 박근혜를 몰아내고 제 3기 민주정부를
탄생시켰다.
그의 친구인 문재인이 대통령에 당선된 것이다.
이제 얼마 뒤 문재인 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를 만나게 된다.
초강대국인 미국 대통령과 대등한 회담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대가 있다.
자존심을 잃지 않는 거다.
마치 미국의 한 개 주지사처럼 행동했던 전두환 노태우 이명박 박근혜와
달리 당당한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할 말을 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세상의 중심이 내가 발딛고 살아가는 이 땅이란 것을 느끼게
해줬음 좋겠다.
 
2017.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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