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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작업

학습지 만화

by 만선생~ 2023. 12. 17.
 
 
십년전 후배작가의 소개로 학습지(천재교육)에 만화를 그리게 됐다.
창작만화는 아니고 학습과목과 연계해 그리는 것이었다.
내가 맡은 과목은 사회.
소재는 자유였고 두페이지 분량에 학습요소를 집어 넣으면 되었다.
무엇을 그릴까?
마침 아버지 생각이 났다.
아버지 고향은 황룡강이 흐르는 전남 장성.
황룡강에 댐이 들어서자 아버지는 나고자란 고향땅을 영영
밟을 수 없게 되었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었을까?
친척들 경조사로 장성에 내려갈 때면 꼭 장성댐에 들러
물고기를 사가지고 올라오시곤 했다.
물고기를 손질하는 것도 역시 아버지 몫이었다.
아버지는 수돗가에 앉아 참으로 열심히 물고기 비늘을
벗기고 내장을 따셨다.
나도 이따금 물고기 내장을 땄지만 일의 책임자는 언제나 아버지였다.
아버지가 손질을 마친 물고기를 넘기면 어머니는 요리를 한다.
펄펄끓는 솥단지에 고추장을 풀고 마늘, 생강, 파 등등을 넣은 뒤 이어지는 소금 간...
마침내 요리는 끝이나고 집안은 코끝을 자극하는 매운탕 냄새로 가득하다.
가장인 아버지가 수저를 대면 나머지 식구들의 숟가락이 일제히 냄비로 향한다.
뼈를 발라먹는게 여간 귀찮은게 아니었지만 다른 반찬이 필요없을
정도로 식사는 푸짐했다.
생선도 좋아하셨지만 민물고기를 유독 더 좋아하셨던 아버지.
아마도 아버지는 어린 시절 황룡강에서 물고기를 많이 잡아 드셨던 듯하다.
그 때의 기억이 댐을 찾게하는 것이리라.
십년전 나는 댐이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이라 믿었고 그 믿음 위에서
이 만화를 그렸다.
하지만 지금은 이같은 내용의 만화를 그릴 수 없다.
왜냐면 거짓말이니까.
댐은 우리에게 필요하지않다.
극히 일부만 우리생활에 도움을 줄 뿐 나머지 댐들은 아무 이유없이 물을 가두고 있을 뿐이다.
경관을 해치고 수질을 악화시키는 댐.
아버지에게 고향을 빼앗은 장성댐도 타당성 조사를 하면 바로 허물어야할 지 모른다.
내 만화를 봤을 어린 독자들.
누린 것이 없어 스스로를 기성세대라 생각하지는 않지만 조금 더 세상을 많이 산
어른으로서 미안하다.
무지한 까닭에 거짓말장이가 된 어른...
그런 나를 용서해다오.
 
2014.1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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