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정
골동품가게에 가면 주인들이 희한하게 일제강점기를 왜정 때라고 한다.
일제 강점기나 일제시대라 말하는 사람을 한 번도 못봤다.
사기 그릇도 '일본사기'가 아닌 '왜사기'라 한다.
일찍이 왜는 일본에 대한 멸칭으로 쓰였다.
왜구, 을묘왜란, 임진왜란 같은 말에서 우리가
얼마나 일본을 혐오하며 무시하고 또 무서워했는지 알 수가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난 골동품점에 가면 왜정 때 물건을 많이 사게된다.
일본을 딱히 좋아해서가 아니다.
조선시대 물건에 비해 값이 훨씬 싸기 때문이다.
조선시대는 아무래도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가기 때문에 비쌀 수밖에 없다.
골동품 시장에서 왜정시대 물건은 찬밥이다.
서자취급을 받는다.
따지고보면 왜정도 그리 가까운 시대가 아니다.
인구 비율로 따지면 왜정 때 태어난 사람은 20%가 안될 것 같다.
그리고 아주 어렸을 때 경험을 해 왜정시대에 대한 기억이 많이 남아있지가 않다.
1937년생인 우리 어머니도 왜정 때 기억은 아주 흐릿하다.
시간의 무게를 견디고 살아남은 작품을 고전이라 한다.
마찬가지로 시간의 무게를 견디고 살아남은 물건은 가치가 있다.
비록 우릴 식민지배한 왜정 때 그들 방식대로 만들어진 물건이라도 가치없는
물건이라 여기지 말자는게 내 주장이다.
나는 왜정이 시대를 구분하는 말로 맞다고 생각한다.
고통을 준 상대를 높여 부를 순 없지 않은가.
다만 외교적 말로는 어울리지 않을 뿐이다.
그나마 일제강점기를 왜정때라고 부르는 사람들 수도 얼마남지 않았다.
2024.6.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