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앤티크

풀짚 짚신 만들기

by 만선생~ 2024. 9. 15.
 
 
 
 
 
어느분이 댓글로 짚신을 지적하셔서 유튜브 동영상을 찾아봤다.
민속촌에서 짚신을 보면서도 형태가 이해가 안갔는데 동영상을 통해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근대 이전 이 땅의 서민들이 신었던 신.
볏짚은 질기지가 못하여 금세 닳았다.
그래서 아이들은 맨발로 다닐 때가 많았다.
먼길을 떠날 땐 짚신을 여러컬레 준비 해야했고 길에서도 짚신을 삼았다.
그에 비해 삼으로 만든 미투리는 질겨서 오래갔다.
경제적 여유가있던 양반이나 부농들이 신었으리라.
혜라고 불리는 가죽신은 더 비싸서 왠만한 양반이 아니면 신을 수 없었다.
가죽신 만드는 장인을 가파치라고 했다.
벽초 홍명희가 쓴 소설 임꺽정에선 꺽정의 스승이 혜화문밖에 사는
가파치로 설정됐다.
동학2대 교주 최시형은 평생 쫓기며 살았다.
관원이 들이닥치면 몸을 피해 먼길을 떠나야했기에 언제나 짚신을 삼았다.
교도들에게 말을 하면서도 손을 놀리지 않았다고 한다.
어린시절 내가 신었던 신발은 고무신이다.
짚신에 비해 엄청 질기다.
강화도 조약을 통해 문을 연 조선.
조선은 일본상인들에게 기회의 땅이었다.
신문물에 눈이 뒤집힌 조선 백성들은 너나없이 일본상인에게 고무신을 사서 신었다.
을밀대 고공농성으로 유명해진 강주룡이 일하던 곳도 다름아닌 고무신 공장이었다.
여느 식민지들과 마찬가지로 조선은 식민모국인 일본의 소비시장으로 기능했다.
아베에 의한 경제보복조치가 실행된 지금까지도 일본제품은 한국시장에서 큰힘을 발휘하고 있다.
일제침략의 상징과도 같은 고무신.
고무신은 가성비가 좋다.
질기고 오래간다.
사람들은 더이상 짚신을 신지않게 되었고 이제 민속박물관에 가야만 볼 수가 있다.
이 참에 짚신이나 한컬레 장만해야겠다.
 
2019.9.14 

'앤티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책. 전통 공예 시리즈  (0) 2024.10.06
위험한 나주행  (5) 2024.09.20
반중 포도가 고와도 보이나다  (2) 2024.08.23
답십리 고미술 상가 천판  (0) 2024.08.22
사방탁자 마련  (0) 2024.08.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