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게 글을 쓰면 쓸수록 쓸 이야기들이 계속해 생겨난다.
글감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이어지는 것이다.
평소 글을 쓰지 않는 사람에게 글을 쓰라하면 쓸 엄두를 내지 못한다.
쓸 이야기가 없기 때문이기도 할 이야기가 있어도 쓰는 방법을 모른다.
질량 총량의 법칙이란 게 있단다.
일생동안 한 사람이 겪어야 할 고통의 양이 정해져 있어 어느 한시기 어마어마한
고통을 당하면 나머지 시기엔 고통이 덜하다는 거다.
고통 뿐 아니라 연애, 운, 등등 여러가지 예를 들어 설명을 한다.
하지만 글쓰기엔 이 법칙이 통하지 않는다.
글을 많이 썼던 사람은 쓸게 없어야 하는데 오히려 그 반대다.
만화 스토리도 마찬가지인 거 같다.
작은 이야기라도 써봤던 사람은 쓸 이야기가 또 생겨난다.
한 번밖에 쓰지 않은 사람은 한 번밖에 생겨나지 않은데 반해 두번 세번 쓴 사람은
비례해서 쓸 이야기들이 생겨난다.
나를 예로 들자면 정말이지 할 이야기가 없어 시작한게 정가네소사였다.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집안 이야기였던 거다.
그래서 정가네소사를 끝내면 더이상 만화를 못 그릴 것만 같았다.
그런데 기적과 같이 할 이야기가 생겨났다.
제주도 이야기인 "목호의 난"을 쓰고 그린 것이다.
대단찮지만 그 뒤로도 이야기 꺼리가 정말 예측할 수 없는 곳에서 생겨나곤 했다.
스토리 작가와 협업한 희순할미가 끝난 뒤엔 조선후기를 살다간 두여자 이야기를 썼다.
그 것도 무려 장편으로.
불과 몇달 전까지만 해도 내가 이런 주제의 스토리를 쓰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만화계를 둘러보면 책도 많이 읽고 영화도 많이 보는데 아무 것도 쓰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하나같이 막연하다는 거다.
뭔가 근사한 스토리를 써야겠다는 생각으로 가득차 있는데 손끝에서 나오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어느날 갑자기 기적처럼 지니가 찾아와 근사한 스토리가 써질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미안하게도 그런 기적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지니는 꾸준히 뭔가를 써왔던 사람에게만 찾아온다.
그래서 스토리가 없어 손을 놓고 있는 후배들에게 꼭 하는 말이 있다.
단 한줄짜리 메모라도 좋으니 뭔가를 써라.
그러면 언젠가 할 이야기들이 생겨난다.
내가 바로 그 증거이지 않느냐.
물론 소귀에 경읽기다.
후배들이 바라보는 지점은 나보다 훨씬 더
높은 곳에 있기 때문에 내 말이 들어올리가 없다.
어쩌면 '아후 저 꼰대' 이리 말 할 것이다.
그래도 만약 할 이야기가 없어 힘들어하는 친구가 있다면 이렇게 말할 거 같다.
'한 줄짜리라도 좋으니 일단 뭐라도 써라'
2020.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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