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호 선생이 쓰고 그린 만화 "라이파이"는 60년대 만화방을 강타했다.
그 인기가 80년대 이현세 선생의 만화 "공포의 외인구단" 과 비견될 정도였다.
한국 만화사의 전설로 남은 작품 "라이파이".
68년생인 나는 라이파이를 본적이 없다.
스승님의 입을 통해 전해 들을 뿐이었다.
스승님은 산호 선생의 제자였는데 고등학교 시절
산호선생의 일을 도왔다고 한다.
하루는 스승님께서 내게 복사본 포즈 사진 자료집을 주셨다.
커버 안쪽엔 산호선생의 "라이파이" 원고 한 장이
붙어 있었다.
이게 말로만 듣던 전설의 만화 "라이파이" 원고구나 싶어 뿌듯했다.
앞으로 내가 살아있는 한 영원무궁토록 잘 간직할 터였다.
그로부터 십년 세월이 흘러 스승님께 전화가 왔다.
스승님께서 그 때 내가 준 포즈사진 자료집 갖고
있냐고 물으셨다.
그렇다고 대답하니 그걸 돌려달라고 하신다.
물론 포즈사진자료집따위에 관심이 있으신 게 아니었다.
라이파이 원고를 돌려 달라시는 거다.
수일 후 스승님을 찾아뵈며 포즈사진자료집을 돌려드렸다.
스승님께선 라이파이 원고를 보며 흐뭇한 표정을 지으셨다.
옛날 만화가들은 원고를 따로 보관하지 않았다.
여기저기 흩어져 사라졌다.
쓰레기통에 버리고 제자가 가져가고.
지금으로선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 땐 그랬다.
그만큼 만화에 대한 사회적 위상이 낮았던 거다.
원고가 다시 쓰일 날이 있으리라곤 생각지 못했다.
문화재가 되리라곤 꿈에도 생각할 수 없었다.
원고 뿐 아니라 출간한 책들도 보관하지 않았다.
그래서 당시 출간한 책들은 아주 귀하다.
찾으려해도 찾을 수가 없다.
비록 한 쪽 뿐이지만 라이파이 원고의 가치는 상당 할 것이다.
스승님을 찾아뵌지 오래되어 라이파이 원고가 어떻게 보관돼 있는지 모르겠다.
쓰다보니 김기영 감독의 영화 하녀를 리메이크한
임성수 감독의 영화 하녀의 카피가 생각난다.
"줬다 뺏는 건 나쁜 거잖아요."
당연한 말이지만 원망하는 마음은 추호도 없다.
있던 자리로 돌아갔을 뿐이다.
사진은 박재동 선생님이 보관 중인 라이파이.
박재동 선생님께선 신기하게도 어릴 때부터 그린 그림을 하나도 안버리고 갖고 계신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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