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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려온 글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검사의 의리’ - 김의겸 (퍼옴)

by 만선생~ 2024. 12. 31.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검사의 의리’]
검찰이 윤석열을 공수처로 넘긴다고 하니 옛날 생각이 하나 떠오른다.
2016년 연말 박근혜 탄핵 국면 때다.
검사 윤석열이 한겨레 기자인 나를 찾아왔다.
윤석열은 당시 국정원 댓글 사건을 수사하다
박근혜 정권에 밉보여 지방으로 쫓겨나 있을 때다.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사이인데도, 굳이 보자고 한 이유는 이런 거였다.
“감사의 마음을 전하려 뵙자고 했습니다.
저로서는 박근혜 정부 3년이 수모와 치욕의 세월이었습니다.
\한겨레 덕에 제가 명예를 되찾을 기회가 왔습니다. 고맙습니다.”
박근혜 권력에 원한이 맺힌 한 사내가 고개를 꺾어 인사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검찰이란 조직의 진면목을 엿볼 수 있었다.
얘기를 나누는 중에 윤석열의 전화가 불이 나도록 울려댔다. 후배 검사들이었다.
전화를 받는 그의 태도는 조금 전 나에게 보였던 공손함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분위기가 급전했다.
“뭐라고? 알았어 임마! 짜~아~식들”
어디 뒷골목 사내들이나 쓸 법한 말투로 통화를 했다. 심지어 욕설도 간간이 섞었다.
전화를 끊고는 자기도 좀 민망했던지 이렇게 둘러대는 것이었다.
“애들이 말이죠. 세상이 바뀌니 망년회 한번 하자고 성화입니다. 하, 이자식들.”
그날 전화를 걸어댄 이들은 나중에 이른바 ‘윤석열 사단’으로 분류되는 검사들이었다.
윤석열의 말을 들어보면, 이 후배 검사들은 술도 자주 마시고 서로 챙겨주는 사이였다.
그런데 윤석열이 박근혜 정부에서 기피인물이 되자 연락이 뚝 끊긴 거다.
최순실 사건으로 상황이 바뀌자 다시 보자고 성화라는 것이다.
“세상 인심이 이렇습니다. 거~참”
윤석열은 쓴 웃음을 지었지만 그래도 싫지 않은 모습이었다.
실제로 그는 그런 후배들을 거느리고 검찰총장도 되고 대통령도 됐다.
후배 검사들은 윤석열의 그늘 아래서 출세가도를 달렸다.
그들은 한 몸이 되어 세상을 주물럭 거렸다.
이번에는 거꾸로다.
18일 검찰은 윤석열 대통령과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의 사건을 고위공직자
범죄수사처로 이첩한다고 발표했다.
명분은 ‘중복수사 방지’지만 사실상 ‘윤석열 처단’을 공수처에 떠넘긴 것이다.
윤석열만 공수처 손에 넘기면 너무 티가 나니 이상민을 덤으로 끼워서
팔아넘긴 것으로 보인다.
검찰로서는 이제 윤석열이 짐이다.
아무리 수사를 잘해봐야 본전치기가 어렵다.
내란의 범죄 행각을 온 국민이 지켜봤으니 ‘기술’을 부려볼 여지도 없다.
그렇다고 살모사 마냥 제 어미를 물어뜯어봤자 별 실익도 없다.
과거 검찰이 해온 수법을 국민들이 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데 공수처가 수사의지를 보이니 “옜다”하며 떠넘긴 것이다.
며칠 전만 해도 검찰은 수사의지를 보였다.
재빠르게 특수본도 꾸리고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도 낚아챘다.
윤석열 소환도 통보했다.
그때만 해도 아직 한동훈 대표에 대한 기대가 있었을 것이다.
내란 수사를 통해 ‘한동훈 체제’를 뒷받침하면서 주도권을 계속 쥐리라는 꿈 말이다.
그러나 윤석열에 이어 한동훈마저 무너져 버리니 검찰로서는 전의 상실이다.
윤석열로서는 깊은 배신감이 들 것이다.
검찰에서 조사를 받으면 비록 마지막 가는 길이라도 ‘보스로서의 예우’를 받으리라는
기대마저 무너졌다.
검찰청사에서 조촐한 망년회를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공수처라니! 자신의 임기 동안 그토록 냉대했던 곳 아니던가?
오동운 공수처장은 자기 사람도 아니다.
김태규 국민권익위원회 부위원장을 시키려다 실패해 마지못해 앉힌 사람이다.
사지로 자신을 보내버린 후배 검사들의 얼굴이 하나하나 떠오를 것이다.
그러나 너무 서운해 하지 말기 바란다. 8년 전에 그러지 않았나.
“세상 인심이 이렇습니다. 거~참”
아니 그 정도를 넘어, 권력을 좇는 검찰의 해바라기 성향을 익히 알면서도 자신의
권력쟁취와 유지를 위해 그들의 기회주의 속성을 이용하지 않았나.
 
2024.1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