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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트로트

by 만선생~ 2024. 1. 17.
 
트로트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니...
 
트로트와 뽕작을 좋아한다.
황성옛터를 들으며 처연한 심사에 빠져들고 장윤정의 어머나를
들으며 어깨를 들썩인다.
나는 오늘도 배호 나훈아 남진 심수봉 최진희 송대관 태진아가 부르는
노래에 울고 웃는다.
서주경 같은 간드러진 창법의 노래를 들으면 연애를 하고픈 생각이 절로 든다.
 
10여년 전 공동작업실을 쓸 때다.
하루는 귀가 심심하여 트로트를 한 번 틀었더니
룸메이트인 후배가 괴성을 질렀다.
 
"형~ 트로트는... 제발..."
 
이후 후배는 나를 문화적으로 후진 사람 취급을 했다.
만약 내가 비틀즈나 롤링스톤스 셀린디옹의 노래를 들었으면 어땠을까?
김광석이나 정태춘 이문세 신효범 등등의 노래를
들었으면 분위기가 달랐을 것이다.
물론 나도 이들의 노래를 좋아하고 또 흥얼거린다.
다만 후배와 다른게 있다면 트로트도 함께 좋아한다는 것이다.
그날의 트라우마로 나는 다른 사람 앞에서 절대 트로트를 틀지 않았다.
그냥 혼자서 조용히 들었다.
노래방에 가서도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때 한 두곡 부르는게 전부다.
 
사실 나도 트로트를 마냥 좋아하는 건 아니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들려오는 트로트
메들리엔 질색을 한다.
현철이 부르는 전형적인 엔카풍의 노래도 듣기가 싫다.
일상의 따분함을 배가 시키는 노래다.
또 그 기원을 찾아 올라가면 일본 요나누키단음계와
미야코부시같은 일본 전통 창법이 있다.
(전문적인 건 모른다.)
 
트로트를 정의하자면 이렇다.
시대에 대한 저항은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지극히 체제 순응적인 노래.
그리하여 지배계층은 이들 노래로 대중의 저항의식을 잠재운다.
물론 지배 계층은 트로토를 즐겨 부르지 않는다.
클래식과 팝을 들으며 대중과 자신을 분리시킨다.
트로트를 들었다는 이유로 미개인 취급을 당했던 나!
헌데 그 어느 때부터인가 트롯 열풍이 불기 시작하였다.
늙은이들의 전유물로만 여겨지던 트롯을 젊은이들도
따라 부르는 것이었다.
기성에 대한 저항을 포기한 젊은이들이 그만큼 늘어난 것일까?
아니면 문화란 수준과는 별개로 돌고 도는 것일 뿐인가?
시대에 뒤쳐진 사람이 되기 싫어 부르지 않던 트로트를 나는 이제
공공연하게 다시 흥얼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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