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뚜기도 한 철이란 말이 있다.
지금 비록 잘 나가고 있지만 그 상태가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는 말이다.
이 말을 금과옥조로 여기는 이들은 아마도 연예인이지 싶다.
지금의 인기가 곧 사그라들 거란 예감.
그래서 더 열심히 행사를 뛰어다니며 돈을 모은다.
8,90년대 대본소 만화가 호황일 때 스토리 작가들은 돈 잔치를 벌였다.
스토리 작가들만큼은 아니더라고 데셍맨과 터치맨들 수입 역시 쏠쏠했다.
돈이 필요하면 언제든 가불을 해 쓸 수가 있었다.
실력있는 데셍맨들은 스카우트의 대상이 되었다.
이적료를 받고 화실을 옮겨다녔던 것이다.
모 히트 작가는 데셍맨에게 자기 일을 계속 해주는 조건으로 아파트 한 채를
사주기도 했단다.
모두들 굳게 믿고 있었다.
그 같은 상태가 영원히 지속되리라고.
자연 돈을 물쓰듯 했다.
고료를 받으면 곧바로 여자딸린 술집으로 달려가 밤새 술을 마셨다.
도박 역시 빠질 수 없는 삶의 도락이었다.
내가 잘 아는 선배 역시 데셍맨으로 활동했는데 수입이 그런대로 괜찮았다.
그리하여 상계동에 있는 18평짜리 아파트를 샀다.
문제는 아파트를 산 시점이 대본소 만화의 내리막길이란 점이었다.
믿기지 않게 일거리가 확 줄었다.
일없이 노는 날이 많았다.
시간이 지나도 상태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만화의 본령인 창작을 하고자하나 체질은 이미 시스템 속에 길들여진 뒤였다.
정말이지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무기력 그 자체였다.
선배는 결국 아파트를 팔고 월세살이를 하였다.
세월이 흘러 선배가 살던 아파트는 몇 억을 하였다.
작은 아파트임에도 그랬다.
선배는 후회했다.
신문배달을 해서라도 아파트를 지켜내야 했다는 것이다.
나와 친한 한 인문 시사 유튜버도 부침이 있었다.
정점을 찍을 땐 월 소득이 5천만을 넘었다고 한다.
기세가 한 풀 꺾인 뒤로도 월 2천만원 이상의 소득을 올렸단다.
자연 씀씀이가 커졌고 주변 사람들에게 돈을 펑펑썼다.
지인들과 고깃집에 가면 언제나 계산을 모두 다했다.
역시 그 상태가 계속 이어지는 줄 알았단다.
하지만 어느 순간 조회수가 급감했고 수입이 줄었다.
말은 하지 않지만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게 보였다.
만약 메뚜기도 한 철이란 말을 가슴에 새겼으면 어땠을까?
그래서 돈을 알쓸살뜰 모았더라면?
그래도 다행인 점은 잘 나갈때 주변 사람들에게 베풀었다는 거다.
그 덕으로 어려울 때마다 도와주는 이들이 나타난다.
나 역시 돕고 싶은 마음이 든다.
이제부터는 내 이야기다.
돌아보면 정말이지 한 번도 잘 나가던 시절이 없었다.
하층민으로 근근이 살아왔을 뿐이다.
신용불량자가 되지 않은 것이 기적이다 싶다.
냉정하게 판단하면 나는 잘 나갈 일이 전혀 없을 것 같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작업을 보면 그렇다.
그리하여 근근이 살아갈 일만 예상된다.
그럼에도 인생은 모르는 거다.
만분의 일 확률로 운 때가 맞아 반짝하는 날이 온다면?
메뚜기도 한 철이란 말을 가슴에 새기게 될까?
아니면 주제를 모르고 그동안 눌려있던 욕구를 채우는데 급급할까?
한 번도 경험해보지 그 상태가 나는 궁금하다.
높은 자리에 올라가봐야 그 사람의 인간됨을 비로소 알 수 있다는데
불행하게도 나에겐 그런 기회가 전혀 없었다.
2023.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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