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감영 1
관아에 관심이 많다.
그래서 "강원 감영"이란 그림책을 본 뒤 감영이 있는 원주에 가봐야겠단 생각을 했다.
원주는 간현유원지와 치악산에 오른게 전부다.
시내엔 한 번도 와보지 않았다.
여주에 있는 최새힘 선생 작업실을 출발하여 40여분만에 감영에 왔다.
관아에서 최고 격을 갖춘 건물은 임금에게 보름에 한 번 망궐례를 올리는 객사다.
하지만 객사는 남아있지 않고 관찰사의 집무실인 선화당이 남아있다.
1667년 중건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단다.
조선시대 지방에 파견된 관리를 수령방백이라 한다.
수령은 고을의 최고 책임자인 부사 목사 군수 현령 현감을 말하고 방백은 이들을
지휘하고 관리하는 관찰사를 이르는 말이다.
감영은 한 도의 최고 책임자가 머무는 공간이다.
고을 수령이 머무는 공간과는 격이 다르다.
선화당 역시 고을수령의 집무처인 동헌과는 격이 다르다.
우아하면서 장중하고 장중하면서 우아하다.
선화당 편액글씨를 보니 최규하라고 써있다.
전두환의 꼭두각시 노릇을 했던 최규하 대통령인가?
삼십분 쯤 지나 도착한 조성계 작가님께 물으니 최규하가 원주 사람이란다.
선화당은 감사의 집무처를 일컫는 일반 명사다.
그러니까 조선 팔도엔 8개의 선화당이 있었고 선화당은 각기 고유의 이름을 갖고 있었다.
그렇다면 본래 이름이 뭘까?
좀 더 유려한 글씨로 격에 맞는 현판 글씨를 써줬으면 좋겠다.
'신발을 벗고 올라가세요'
안내에 따라 조성계 작가님과 신발을 벗고 올라와보니 서늘한 바람이 등줄기를 훑고 지나간다.
통풍이 되도록 집을 잘 설계했음을 알 수 있었다.
길게 이어진 회랑과 옻칠을 해 검게 빛나는 우물마루.
건물이 큰만큼 여닫는 문도 두 개가 아닌 세 개였다.
처음보는 구조다.
감영을 찾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조성계 작가님과 나란히 우물마루에 누웠다.
창호지에 비친 창살이 아름답다.
한 숨 늘어지게 자고 싶지만 마냥 그러고 있을 순 없었다.
선화당을 나서 감영의 또 다른 공간인 후원으로 발길을 옮겼다.
2023.8.18
'여행 국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장성 필암서원 (0) | 2024.08.19 |
---|---|
강원 감영 2 (0) | 2024.08.19 |
가지 (1) | 2024.08.19 |
거제도 수정성 서낭당 (1) | 2024.08.19 |
남원 광한루 월매네 집 (1) | 2024.08.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