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당너머에 가면 같은반 친구
성옥이가 있어 어두워질 때까지 놀곤 하였다.
몇 집 안되는 작은 마을로 야산 하나를 넘으면 산너머였다.
그 곳 역시 작은 마을로 겨울날 아이들과 어울려 눈싸움을 하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의문이 들었다.
산너머 있으니 산너머인데 당집은 어디있는 거지?
아마도 신작로가 나면서 헐렸으리라.
근대 이전, 우리 조상들에게 가장 친숙한 공간 가운데 하나는 서낭당일 것이다.
마을을 벗어나거나 들어설 때마다 서낭당에 자신의 안전을 기원하고
소원하는 바를 빌었을 것이다.
서낭당에 모신 신들이 바라는 바를 들어주건 들어주지 않건 사람들은 서낭당을
마음의 의지처로 삼았다.
나 역시 한 세기 전 태어났다면 서낭당을 지나며 옷매무새를 바로했을 것이다.
21세기 서낭당은 대한민국 지도 위에서 완전 사라졌다.
당산동 당고개 신당동같은 일부 지명으로만 남아있다.
마을 어귀마다 있던 서낭당을 찾는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다.
일본의 민간신앙인 오지죠상이 도심 곳곳에 남아 있는 것과 달리 한국의 서낭당은
애써 찾아가야만 겨우 만날 수 있다.
지난 5월 거제도에 사시는 손응현 선생을 찾아뵌 뒤 구조라라는 곳을 갔었다.
대나무 숲이 터널처럼 길게 이어져 찾는 여행객들이 제법 많다고 한다.
말그대로 대나무숲 터널을 지나니 수정성이란 성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
조선 시대 해안방비를 위해 쌓은 성이었다.
아무런 정보없이 찾은 곳!
성을 한바퀴 도는데 뜻하지않게도 서낭당이 보였다.
서낭당은 언제나 큰 나무와 함께 한다.
이를 신목이라고 하며 오색으로 된 천을 둘러 신이 머물고 있음을 알려준다.
신목 아래엔 당집이 있는데 신을 모시는 곳이다.
어떤 곳일까?
궁금증에 조심스레 당집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 제사용 집기들과 그림이 보였다.
그림이 도록에서 보던 것과는 조금 달랐다.
부처가 중심에 있고 주위에 산신령들이 그려져 있다.
토착신앙과 외래신앙이 싸우지않고 한데 어우러져 보기 좋았다.
뜻하지 않게 만나게 된 서낭당이지만 아쉬운 점도 있었다.
당집을 시멘트 대신 나무로 지은뒤 기와나 초가를 얹혔으먄 어땠을까?
예산이 없었나?
분위기가 영 나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분위기가 제대로 사는 서낭당을 가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벽초 홍명희가 쓴 "임꺽정"과 내가 쓰고 그린 "친정가는길"은 서낭당이 등장한다.
내용은 서로 다르지만 두 작품 모두 서낭당에서 남녀간 운우지정을 나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