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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많이 전에 간 국수집에서 '양많이'를 달라고 했다.양많이를 주문했으니 분명 양이 많아졌을텐데 잘 모르겠다.맛은 그대로다.맵고 달고 또 시고...한마디로 맛있다.양많이를 시켰으니 일이천원 더 나오리라생각하고 오천원짜리 하나와 천원짜리 두어장을 꺼내드는데 값이 그대로다.오천원 내고 오백원을 거슬러받았다.4500원짜리 외식을 부담없이 할 수 있는 나.부자인 거 맞지요?2020.1.9 2025. 1. 9.
윤상원 열사가 나온 명문 대학교 오늘 전남대를 나온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한동안 의정부에서 일을 하게되었다며 며칠 재워줄 수 있느냐 물었다.그러라고 했다.나는 통화 말미에 전남대가 명문대학이라고 말해 주었다.5.18 항쟁의 주역들이 전남대 재학생이거나 졸업생이기 때문이다.민주화 운동의 상징인 윤상원 열사도 전남대를 나왔다.친구는 자신도 치열하게 운동을 했었단다.정문이 사적지로 지정된 학교.이번 주 광주에 내려가면 전남대 교정을 거닐어 볼 생각이다.윤상원 열사 조형 작품을 보며 잠시나마 명문대생이 된 기분을 느껴봐야겠다.2023.1.9 2025. 1. 9.
뉴탐사 강진구 기자가 말하는 윤상원 열사 지난 토요일, 시민어론 더탐사 팀이 광주에 내려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윤상원 열사 묘비에 가 인사를 드리는 것이었단다.위기에 빠진 이 나라 민주주의가 바로서길 빌었단다.평소에도 더 탐사를 고맙게 생각해왔는데 윤상원 열사를 찾아주니 더더욱 고마웠다.그러면서 하는 말이 열사는 되지말자였다.살아서 언론이 바로서고 민주화 된 사회를 꼭 보자고 하였다.내 마음도 그렇다.헌데 강진구 기자가 말하길 윤상원 열사가 만나이 스말아홉 우리나이로 서른에 돌아가셨다고 한다.틀렸다.만나이로 서른, 우리 나이로 서른 하나에 돌아가셨다.한살 틀리게 말했다고 아무도 뭐라할 사람은 없겠지만 나한텐 한 살 틀리게 말한 것이 분명히 들렸다.적어도 윤상원 열사에 대해선 강진구 기자보다 내가 더 잘알고 있는 듯 하다.2023.1.9 2025. 1. 9.
나주 한 살 위 친구네 집 지금은 만화를 그리고 있지 않는 한살위 친구의 집에 왔다.정확히는 며칠째 머물고 있다.반나절은 작업을 하고 반나절은 여기저기를 돌아다닌다.하루종일 집에 쳐박혀 작업만 하던 나로선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이제야 숨통이 트이는 것 같다.친구는 생활인이다.생업을 위해 일하는 틈틈이 목공일을 한다.지금은 취미지만 언젠가는 목공으로 돈을 벌고자 한다.그래서 이층짜리 넓은 집을 사 2층은 생활공간,1층은 작업실로 쓴다.작업실엔 목공을 위한 기계들로 가득하다.기계값만 천만원 넘게 들었다고 한다.중고임에도 그렇다.목공실로 들어서면 기분좋은 냄새가 난다.발아래 흩어져있는 톱밥 냄새다.진실로 바란다.친구가 목공으로 생활도 해나갈 수 있기를.좋아하는 일을 생업으로 삼을 수 있다면 무엇을 더 바랄까!친구는 목공실 옆에 개를.. 2025. 1. 9.
목호의 난 인세 >를 펴낸 딸기책방 으로부터 연락이 왔다.지난 6개월간 팔린 책의 부수와 그에 따른 인세 정산 때문이다.생각보다 책이 많이 팔려 놀랐다.나는 책이 한 권도 안팔리는 줄 알았다.아주 소수지만 누군가 내 책을 사서 보고있다는 것에 마음이 훈훈하다.책을 낼 때는 욕심이 많았다.10쇄만 찍으란 후배의 덕담이 야속했다.100쇄를 찍을 건데 10쇄라니.지금 생각하면 10쇄만 해도 어마어마한 성공이다.솔직히 매체들로부터 인터뷰 요청이 쇄도할 줄 알았고 그에 따라 살림살이도나아질 줄 알았다.의병장 희순이 나왔을 때도 그렇고 친정가는길 1편이 나왔을 때도 그렇다.그런데 너무나 조용하다.얼마전 큰형과 통화를 했는데 책을 팔아 돈버는 시대는 끝났다고 한다.나역시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수입의 다변화를 꾀해야 한다.쉽지 않은 .. 2025. 1. 9.
지우개 단상 당연히 갖추고 있어야 할 물건이 없어 당황할 때가 많다.식칼없는 주방장을 상상할 수 있는가?대패없는 대목장을 상상할 수 있는가?마찬가지로 펜과 연필 잉크 만화용지를 가지고 있지 않는만화가는 상상할 수 없다.도구야말로 그 사람이 무슨 일을 하는지 말해주는 알파요오메가인 것이다.펜대 펜촉 연필 지우개 만화용지 잉크...고백하자면 만화가로서 갖추어야 할 물건이 없을 때가 참 많다.그만큼 작업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는증거이기도 하다.만화를 완전 포기하지 않는 한 도구는 일단 충분히 갖추어놓고 있어야 한다.언제 어느 때 의뢰가 들어와 작업을 할지 알 수 없기때문이다. (물론 만화가는 의뢰가 들어오지 않아도 기본적으로자기 작업을 하고 있어야 한다.)며칠 전부터 지우개가 하나밖에 없는 것이 여간 신경쓰이는.. 2025. 1. 9.
나주 영산포 등대 영산포 등대두번째 찾은 영산포 역사 갤러리.김순희 선생님이 문화재 해설사로 계셔 안내를 받았다.홍어거리 죽전 골목을 지나 찾은 곳은 영산포등대.1915년 영산강의 가항 종점인 영산포 선창에 건립되었단다.한국의 내륙 하천에 있는 유일한 등대이기도 하다.수위계가 있어 강수위를 측정했다고.등대는 1989년까지 사용되었다.번창하던 영산포는 사람이 없다.황포돛대도 운행을 멈추었다.강바람에 옷깃을 여미며 다시 역사 갤러리로 돌아와 고지도를 보았다.영산강 일대가 한눈에 들어온다.영산강 하구를 내해라고 했던 남파고택의 박경중 선생님 말씀이 생각났다.그만큼 물산의 이동이 많았다는 이야기다.1970년 후반 영산강 하구둑이 건설되면서 영산강 하구는 내해로서기능을 완전 상실한다. 2025. 1. 9.
나주 산림자원 연구소 전라남도 산림자원 연구소박향미 작가님 친구인 이미숙 선생 안내로 전라남도 산림자원연구소(나주)를 가보았다.아무런 사전 정보없이 찾은 곳.일단 입구에 들어서면 길게 이어진 메타세쿼이야 숲길이 보인다.길은 사방으로 이어져 어딜 가더라도 아름다운 나무가 즐비하다.연필향나무와 테다소나무가 하늘 위로 가지를 뻗고 낮은 곳엔 애기동백이눈길을 사로잡는다.겨울은 겨울대로 아름답지만 싹이 돋아나는 봄이면 더욱 아름다울 것 같다.이미숙 선생의 직장은 산림자원연구소 바로 옆에 있는 나주병원으로점심엔 이곳 연구소 숲길을 걸으며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꿈의 직장이 아닐 수 없다. 2025. 1. 9.
나주 남평 문바위 남평 문바위화순 세량지 다녀오는 길에 '문바위'란 팻말이 보여 들어가 보았다.길목에 문익점 벽화가 그려져 있어 남평 문씨와 관계가 있나 싶었다.바위는 보호 전각으로 둘러싸여 있었다.전각이 으리으리 하다.안내문을 읽으니 남평문씨 시조인 문다성이 났다고 한다.중시조는 원나라에서 목화솜을 들여온 문익점이다.통일운동가 문익환 목사와 대한민국 19대 대통령 문재인,국회의장을 지낸 문희상이 남평 문씨다.보호각 아래 문암文巖이라 써있는 비는 1851년 문약연이란 이가 세웠다고 한다.뒷면엔 건립일자가 있는데 명나라 마지막 황제인 숭정崇貞 연호를 썼다.들으니 근래 영화배우 정우성씨 아이를 낳은 모델 문가비씨가남평 문씨라고 한다. 2015.1.7 2025. 1.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