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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작업/목호의난 1374 제주

노국공주의 말타기

by 만선생~ 2024. 11. 17.

순발력과 공간감이 떨어지면 운전을 잘하기 힘들다.
운전 중 조수석에 탄 사람들로 부터 쫑크(?)를 많이 먹었다.
운전을 처음 처음 시작한 18년 전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다.
옆에서 운전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참으로 답답한 모양이다.
동변상련의 정 때문일까?
지금까지 나는 운전실력(?)을 뽐낸 적도 없고 누가 운전을 못한다고
타박한 적도 없다.
주유소 직원이 나오지않아 경적을 울린 것 외엔 경적을 울린 적도 없다.
길앞에서 보행자가 걸어가면 지나갈 자리가 날 때까지 마냥 기다린다.
보행자가 우선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살면서 가장 부질없는 게 운전실력을 뽐내는 것이라 생각한다.
보기에 좀 답답하다고 아유를 하는 사람을 보면 인격적으로 성숙하지 못하단 생각도
하게 된다.
고려로 시집온 원나라 공주 보탑실리는 내가 우리 역사에서 가장 사랑하는 여인이다.
공주는 고려로 시집온 다른 원나라 공주들과 달리 진정 고려를 사랑했다.
왕이 반원자주개혁정책을 펼치는데 큰힘이 되어주었다.
공주는 흥왕사에서 부원배와 결탁한 김용의 무리가 왕을 죽이기 위해 쳐들어오자
온몸으로 막아섰고 홍건적으로 난으로 피난을 가서는 힘써 백성을 위무했다.
피난지 안동에서는 지금도 공주가 백성의 도움으로 강을 건너던 모습을 재현하는 행사를
벌이고 있는데 놋다리 밟기이다.
공주가 백성을 사랑했듯이 백성들도 공주를 사랑했단 증거다.
사랑의 형태는 다양하다.
부부간 사랑도 그렇다.
뜨거운 연애를 거쳐 결혼에 골인했지만 이내 시들한 부부도 있고 중매결혼이지만 살면서 애정이
깊어지는 부부도 있다.
연경에 볼모로 끌려가 있는 고려왕족 왕기와 원황실 위왕의 딸 보탑실리의 결혼은 정략적이었다.
로맨스가 피어날 구석이 없다.
하지만 두 사람의 사랑은 시간을 뛰어넘어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다.
두사람의 만남을 어떻게 그려야할까?
난 운전 중 조수석에서 쫑크주던 사람들을 생각했다.
유목민족에게 말은 마치 공기와 같아 어릴 때부터 말과함께 생활한다.
원나라 황실의 여인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남편될 사람이 말을 못타는 것이다.
보통사람같았으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거나
야유를 하겠지만 공주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남자와 보폭을 맞추어 걷는다.
물론 역사서 어디에도 두사람의 만나는 과정을 기록하진 않았다.
이 장면은 상상의 소산이다.
고백하자면 나는 이 장면을 복수하는 마음으로 그렸다.
운전못한다고 야유하던 사람들에게...
조선초기 편찬된 고려사절요에 따르면 훗날 공주는 궁궐의 뜰에서 왕에게
말타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고 한다.
고려왕 왕기의 시호는 공민이고 원나라공주 보탑실리의 시호는 노국대장공주다.
두사람은 북녁땅 개성의 릉에서 나란히 잠들어 있다.
 
2018.1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