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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단상

나의 데뷔작인 하데스의 밤

by 만선생~ 2025. 2. 9.

 
 
나 만화가 정용연의 데뷔작은 '하데스의 밤'이다.
16쪽 쪽 분량으로 1991년 8월 24일 발행된 만화잡지 "주간만화"에 실렸다.
장재희란 필명을 썼는데 장재희는 군대고참이었다.
군장에 장재희란 이름이 적혀있어 훈련을 가거나 분초이동 시 늘
장재희를 찾았다.
한번도 만나지 않은 고참이름은 그렇게 필명이 되었다.
스토리를 쓴 것은 우연이었다.
비오는 날 화장실에 가려는데 고양이 한마리가 처마아래 쭈구려 앉아있는 거다.
나는 한참동안 고양이를 바라보았다.
비가 그치길 기다리는 듯 했다.
고양이를 뒤로하고 방으로 들어온 나는 종이에 무언가를 끄적였다.
고양이를 매개로 한 치정살인극이었다.
내가 쓴 것은 맞지만 꼭 누가 나를 움직여 써주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쓴 스토리로 콘티를 짜고 스케치를
시작했다.
동작 표현이 되지않아 큰형한테 부탁해 포즈사진을 여러장 사진을 찍었고 유명작가들
그림을 변형해 내식대로 바꿔 그렸다.
그래선 안되지만 남의 그림을 빌려서라도 컷을 채우고 싶었다.
두달 쯤 걸렸나?
어마어마한 지우개질과 화이트 수정
그리고 땜방 끝에 완성된 원고를 들고 주간만화를 찾았다.
주간만화는 마포구 아현동에 있었는데 가슴이 떨려 바로 들어가질 못했다.
문을 열려다 말고 계단 아래로 내려가 마음을 진정시킨 뒤 문을 두드렸다.
주간만화 편집부는 네사람이었다.
중년의 편집장과 사식작업을 하는 여직원 셋.
원고를 검토한 건 편집장이었다.
원고를 훑어본 편집장은 한부분을 가리키며 독자가 시간의 흐름을 인지하지 못하니
이곳을 수정해오면 실어주겠다고 했다.
믿어지지 않았다.
내 원고가 실린다니.
환호성을 지르며 빛의 속도로 집에 돌아온 나는 원고수정을
마친뒤 다음날 주간만화를 찾았다.
편집장은 별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다음주 전국 가판대에 주간만화가 비치되었다.
특선단편이란 글씨에 하데스의 밤이란 제목과 장재희란 이름이 큼지막했다.
만화가 정용연의 탄생이었다.
하지만 이내 깨달아야했다.
데뷔가 중요한 게 아니란 걸.
뒤바쳐 줄 작품이 줄줄이 있어야 한다는 걸.

20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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