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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시 죽산면 하시모토 농장사무실.
지금은 퇴락해 있지만 일제 강점기엔 농장주 하시모토를 비롯 관리인들로
붐볐을 수탈의 상징이다.
조정래 소설 아리랑의 무대이기도 한.
소설 속 장면이 생각난다.
하시모토가 타고가는 자동차를 보고 놀라는 한편 적개심에 불타던 조선
사람들의 모습이.
당시 일본인들의 위세는 하늘을 찌르고도 남았다.
그에 반해 조선인들의 삶은 처참했다.
동척의 농간으로 대대로 지어오던 농토를
빼앗기고 하시모토 농장에서 고용살이를 해야만 했으니 죽지못해
연명할 뿐이었다.
농장사무실도 사무실지만 더 인상적이었던 건 관리인들이 살았을 숙소다.
복원인듯한데 이 정도 건물이라면 살만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하시모토가 살았을 집은 어땠을까?
영원히 터잡고 살작정이었으니 으리으리 했겠지.
열두살까지 살았던 내고향 김제.
쌀이 국가경제에 차지하고 있는 비중이 아주 컸을 땐 사람들로 붐볐으나
지금은 어딜가나 쓸쓸함이 감돈다.
2020.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