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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작업/정가네소사

정가네소사 열린전북 기사

by 만선생~ 2023. 12. 17.
 
모처럼 “정가네소사”를 검색해보니 열린전북 기사가 나오네요.
누군지 모르지만 이렇게 잘 써주시다니...
작가로서 고마울 따름입니다.
몇몇 신문에 소개되고 방송도 탔지만 책이 많이 팔리진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이런 기사를 볼 때마다 힘들여 그린 세월에 대한
보람을 느낍니다.
아래는 열린전북 기사
전북의 문학@문화 /세밀화로 그린 99% 민중들의 역사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풀어 쓰면, 소설 한 권은 족히 될 것이다.”
젊었을 적 이야기를 들려 달라치면, 어머니는 입버릇처럼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다. 그런데 어디 내 어머니뿐이겠는가. 누구든 당신들의 부모님 혹은 할머니 할아버지께 지난 세월 살아온 이야기를 여쭤보라. 으레 ‘소설 한 권’은 너끈히 입에 오르락내리락 할 것이다.
정용연의 󰡔정가네소사󰡕는 작가의 형제와 부모, 조부와 증조부, 외가와 당숙 등 4대에 걸친 가족사이다. 부모님의 구술과 증언, 유년의 기억을 바탕으로 한 자전작품이자 만화책으로는 드물게 당대의 풍경, 언어, 공간을 세밀하게 그려낸 민족지학적 작품이다. 어떤 사건은 허구를 가미해 극적인 장면을 연출해내기도 하는데 역사적 사실에 상상력을 더한 팩션이 되기도 한다. 공간적으로는 임실, 부안, 김제, 서울 그리고 만주를 넘나들고 시간적으로는 일제강점기와 근현대사를 뛰어넘는다. 이야기의 흐름은 연대기적이 아니라 가족으로부터 그때그때 들은 ‘어떤 기억’을 중심으로 이어진다.
실패하거나 힘겹게 시대를 살아낸 99% 민중들의 이야기
󰡔정사네소사󰡕는 총 3권, 스물네 가지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었다. 작가 정용연은 저 멀리 모악산이 내려다보이는 김제 들녘에서 태어나 유년시절을 보냈고 청년기를 서울에서 보냈다. 그의 어머니 고향은 전북 김제이고 아버지 고향은 전남 장흥이다. 증조할아버지는 한학자였고, 할머니는 만주에서 해방을 맞아 조국으로 돌아오는 길목에서 돌아가셨다. 부안의 만석집 아들이자 일본 유학파였던 외할아버지는 금광으로 일확천금을 긁어모은 방응모와 최창학을 꿈꾸며 사금채취 사업에 손을 댔다가 가산을 탕진한 후 노름과 여자에 빠져 반평생을 보냈다. 젊은 시절 연동댁으로 불리웠던 외할머니는 남편의 외도와 투기로 무너진 집안을 지키고 억척스럽게 자식들을 키워냈다. 전쟁통에 부모를 잃은 순호 당숙과 빨치산 대장이 되어 죽임을 당했던 육촌 할아버지 등등 친인척에 대한 이야기도 담았다. 뿐만 아니다. 하루도 어김없이 군산 어시장에서 생선을 떼어오던 부지런한 생선장수 길룡이아저씨, 주인공네가 서울에 올라와 세들어 살았던 만홧가게 아줌마, 청량리 오팔팔 사창가에 마네킹처럼 서 있었던 여자 등등 직계혈통을 넘어 시대를 함께 살아온 이웃에 대한 이야기도 상세하면서도 간결하게 그렸다.
이 중에서도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무면허 의사 노릇을 하던 아버지와 성냥 공장 아가씨였던 어머니의 이야기이다. 아버지 정동호는 한학자인 증조할아버지 무릎 아래에서 천자문은 물론이고 명심보감, 동몽선습 등을 배웠지만 일제강점이라는 나라의 격변을 겪으며 초등학교 3학년에 학업을 중단해야 했다. 6년의 군대 생활 동안 어깨너머 의술을 배웠던 아버지는 사회에 나와 무면허 의사(아바이) 활동을 했지만 이마저도 이웃 약방의 신고로 중단하고 만다. 이후 양잠사업을 벌였지만 얼마안가 빚더미에 안고 고향을 떠나 서울로 올라가게 된다.
그런데 이 이야기 속에서 그려낸 가족과 이웃 그리고 화자인 ‘나’의 모습은 영웅처럼 비범한 재주를 갖고 있거나 시대의 중심에 선 화려한 주인공의 모습이 아니다. 이들은 하나같이 평범하며 오히려 급변하는 시대에서 도태되거나 실패한 이들로 우리사회의 하층민이자 주변부를 차지한다.
작가이자 작중 화자인 ‘나’는 프롤로그에서 이렇게 토로한다.
‘왜 만화라는 것을 시작했을까. 무늬만 만화가인 이 생활, 너무 지겹다’
‘돈도 없고, 만날 사람도 없는 주변부 인생… 그나마 집이 좀 살면 손이라도 벌릴 수 있었을텐데…….’
‘아버지는 왜 그렇게 무능한 걸까. 어머니는 무능한 아버지를 만나 고생만 하고.’
가진 것도 없고 근성도 없는 만화가에 가방끈은 짧고 배운 기술도 없다고 자신의 현재를 솔직하게 고백하며 화두를 꺼내는 작가는 실제 건설현장노동자, 생산직 노동자, 세일즈맨, 탑차 운전, 중국 엿 장사, 유아교구프로그램 개발까지 소위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을 해왔다. 그러다 40줄에 들어섰고 어느새 다시, 만화의 주변부를 서성거렸다고 한다. 그리고는 술만 마시면 언제나 ‘세 번의 죽을 고비’를 이야기했던 아버지, 언젠가부터 느닷없이 옛날 이야기를 꺼냈던 어머니의 이야기를 그려봐야겠다고 작품을 시작한 배경까지 시시콜콜하게 소개한다.
부차적이며 사소한 것처럼 보이는 이 프롤로그는 이야기의 전반에 걸쳐 있는 ‘민중 서사’와 맥을 같이 한다. 세상을 뒤흔들 특별한 힘을 가진 1%의 상류층 혹은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늘 역사의 99%를 차지하고 있는 지극히 평범한 하층민 혹은 실패를 일삼거나 살기 위해 바둥거리는 낮은 계층의 이야기들 말이다. 그리하여 99% 중 하나인 평범한 독자들은 ‘정가네소사’가 그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네 이야기로 더욱 생생하고 진솔하게 느껴진다. 아울러 정가네소사는 김가네, 이가네, 박가네 소사 그리고 이름 없는 민중들의 역사로 읽혀지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개인적 존재이자 역사적 존재
만화의 첫 페이지에는 본격적인 이야기를 펼치기에 앞서 4대에 걸친 정가네 가계도를 소개하고 있다. 친가와 외가로 나뉜 가계도는 증조부를 시작으로 부모님 세대를 거쳐 작중 화자인 ‘나’ 정용연의 세대까지 이어진다. 재미있는 것은 여느 역사책의 연대표와는 달리, 각 인물마다 유년, 청년, 장년의 모습을 동시에 나열했다는 것이다. 덕분에 등장 인물들은 작가 개인의 기억에만 존재하는 사적 인물이 아니라, 개별적이고 고유한 역사성을 지닌 객관적 인물로 읽히게 된다.
가족, 이웃, 그리고 화자인 ‘나’의 이야기마다 겹쳐 흐르는 것은 굴곡진 우리나라의 근현대사이다. 미시적이며 사적인 개인의 이야기는 통시적이며 거시적인 정치사나 경제사와 맞물려 톱니바퀴처럼 운명적이고도 현재적이며 공시적으로 흐른다. 일본 유학파였던 외할아버지가 사금채취에 홀렸던 것은 전쟁 자금을 모으기 위한 일본의 금산 정책의 결과였다. 아버지의 잠농업이 빚더미에 오르게 된 것은 정부가 세계은행에서 차관을 해서까지 잠농업을 장려했다가 미국과 중공, 중공과 일본의 핑퐁 외교 결과 무책임하게 정책을 철회하고 뒷수습을 소홀히 한 덕분이었다. 뿐만 아니다. 작가는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공간에도 먼 옛날의 역사를 끌어와 병치시킨다. 이를테면 첫 번째 에피소드인 「우물가」에서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만난 장소가 나오는데 바로 우물가였다. 지극히 평범한 이 우물가를 고려를 창업한 태조왕건과 장화 왕후 오씨가 인연을 맺은 버드나무 아래 우물가를 끌어들인다.
이를테면 이야기 전반에 걸쳐 작가는 모든 사물, 모든 인물의 현재가 탈맥락적인 존재가 아니라 과거 유구한 문화사와 정치사, 경제사의 연장선상에 있는, 역사적 존재로 자리매김하고자 하는 것이다.
지역의 풍경과 역사 그 세밀화
내 어머니의 고향인 전라도 김제는 예로부터 벼와 함께 금이 많이 나기로 유명한 곳! 금구·금평·금산 같은 지명은 모두 금이 많이 난데서 유래한 것이다. 미륵 신앙의 본거지로 김제 평야 동쪽에 우뚝 솟은 모악산(793미터)···. 모악과 모악이 거느린 산들은 암석 중에 황금을 많이 함유. 산에선 산금(山金)을 캐고, 그 아래 들과 내에선 사금(砂金)을 채취한다. -2권 50쪽.
내가 유독 재미있고 주목해서 읽은 장면들은 우리 지역에 관한 것들이었다. 작가 정용연의 고향이기도 한 김제 그리고 어머니의 고향인 부안, 6.25전쟁 당시 먼 친척의 이야기가 펼쳐졌던 임실 등 많은 부분의 이야기가 전북의 곳곳을 무대로 한다.
작가는 배경에 대해서도 세심한 설명과 역사적 사건을 풀어놓고 있다. ‘특히, 금구면에 우뚝 솟은 미쓰비시의 거대한 사금 채취선은 금전꾼들의 욕망을 부채질하기에 충분했다’라며 일제강점기 전국 사금 채취량의 70퍼센트를 생산했던 당시 김제의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과거 풍요로운 곡식을 맺었던 공간은 금맥이 터지길 꿈꾸는 이들의 열망과 희망의 공간이 된다. 그러나 여기저기 급하게 파헤치며 생기게 된 금 방죽은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목숨을 허무하게 빼앗는 비극의 공간이 되기도 한다.
6.25 전쟁 당시, 쌀을 구하러 동진강물을 건너야 했던 어린 어머니의 기억도 생생하다. 적산 가옥이 즐비한 김제 읍내를 가로질러 가는 풍경과 생사를 가를 수 있는 ‘도민증’ 등에 대한 설명과 묘사는 당대 절박했던 순간을 극적으로 전경화한다.
한편으로 인물 간의 대화나 진술에 있어 당대의 은어와 지역어 등도 빈번하게 나온다. ‘아부이’는 무면허 의사를 일컫는 말이고 ‘후테이센진(不逞鮮人)’은 불온하고 불량한 조선사람이란 뜻을 가리키는 일본어라 한다. 고등어 등을 파는 생선장수를 ‘생긋장수’라 하고 ‘벌써’를 ‘폴새’라 하며 ‘오디(뽕나무 열매)’를 ‘오도개’라고 하는 등 친근하면서도 향수 짙은 전라도말을 이야기 구석구석에 사용하고 있다.
이렇듯 󰡔정가네소사󰡕는 작고 사소한 사건들을 세밀하게 묘사해 냄으로써 강한 정서를 만들어 내고 있다. 일상적인 사물, 장소들은 이들 가족의 경험과 증언, 기록 등에 의해 작고 친숙한 ‘이웃’의 풍경이 되어 특정 의미와 깊이 있는 가치를 부여하게 한다. 역사에 대한 경험담 그리고 지역의 공동체가 공유했던 언어 등은 흐릿한 세계를 구체적인 세계로 인식하게 한다.
역사는 먼 곳에서 흐르지 않는다. 주인공이 따로 설정 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지금 여기’를 살아가고 있는 다수 민중들에 의해 사회는 움직이고, 역사는 구체성을 띠며 그 장구한 흐름을 이어간다. 7년 동안 끈질기게 자신의 가족사를 연재해 3권의 작품집으로 묶어낸 󰡔정가네소사󰡕는 이런 지극히 평범한 역사적 진리를 담아낸 증언록이자 세밀화이다.
 
2016.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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