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 정리를 하다가 "세습사회"란 책을 발견하고 집어들었다.
교사이신 심규한 선생의 사회 비평 에세이집이다.
덕분에 어쩔 수없이 또 권샘 생각을 하게 되었다.
왜냐면 책의 여는글을 권샘이 썼기 때문이다.
심규한 선생이 권샘에게 서문을 부탁해 썼다고 한다.
분량은 일곱 쪽.
남의 책에 쓴 서문치고는 제법 길다.
어쩌면 민폐가 아닐까 싶기도하다. .
한데 읽다보면 절로 빠져든다.
한 사람의 결이 온전히 느껴진다.
자신의 지식을 뽐내지않고 조곤조곤 얘기하는 것이
참 좋다.
지성이란 이런 것이구나 싶다.
스콧 피츠제럴드가 쓴 위대한 개츠비와 위기철 선생이 쓴 아홉살 인생의 앞부분 그리고
김부식이 쓴 삼국사기의 온달전은 내가 특별히 좋아해 여러번 읽었다.
마찬가지로 권샘이 쓴 "세습사회"의 여는글도 한 번을 더 읽었다.
나는 언젠가 권샘에게 "세습사회"의 여는글이 참 좋았다는 이야기를 했다.
권샘은 조금 쑥스러워하며 나 말고도 그런 생각을 하는 이가 더 있다고 하였다.
대학 문학 동아리 후배가 권샘이 쓴 여는글을 보고
사람이 달리 보였단 말을 하더란 것이었다.
"세습사회"가 출간 된 것이 2017년.
그 때 권샘은 권숯돌 대신 아명인 권내영을 쓰고 있었다.
권유선 권내영 권숯돌은 모두 권샘을 이르는 말이다.
2023년 여름 나는 출판사 편집부에 "1592 진주성"
출간을 앞두고 작가의 말을 써서 보냈다.
공동 저자인 권샘은 내게 작가의 말을 보여 달라고 하였다.
내가 어떻게 썼는지 궁금했던 모양이다.
다음날 권샘은 출판사에 보냈다며 내게도 자신이 쓴 작가의 말을 보내왔다.
구체적 사례를 들어가며 조금은 격정적으로 쓴 내 글에 비해 훨씬 담담했다.
아니 차분하다는 말이 더 맞다.
나는 권샘이 쓴 작가의 말을 한 번 더 읽었다.
독자에게 신뢰를 주는 좋은 글이었다.
이후 권샘이 글을 얼마나 더 썼는지는 모르겠다.
간간이 올라오던 권샘의 페북 글은 더 이상 올라오지 않았고 폐북 계정도 어느 순간
사라지고 말았다.
본인의 의지로 없앤 것이었다.
세상과 이별을 앞둔 이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으리라.
아마도 "1592 진주성"에 쓴 작가의 말이 권샘이 공적 공간에 남긴 마지막 글이
아닐까 싶다.
이틀 전.
출판사에서 연락이 오기를 "1592 진주성"은 감리를
마치고 인쇄에 돌입했다고 한다.
출간일은 4월 5일이란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책을 통해 권샘을 만나게 될까?
공동 저자인 나로서도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