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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책, 출판

대표작

by 만선생~ 2024. 7. 10.

간혹 사람들이 묻습니다.
대표작이 뭐냐고.
가장 아끼는 작품이 뭐냐고.
깨물어 안아픈 손가락이 없습니다.
평가를 어떻게 받을지 몰라도 모두 제가 사랑해 마지 않는 작품입니다.
쉽게 그린 컷이 하나도 없습니다.
모두 혼신의 힘을 다해 쓰고 그렸습니다.
혼신을 다한 결과가 겨우 그거냐 물으면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꼭 한 작품 들라면 <<정가네소사>>(3권)를 꼽겠습니다.
3대에 걸친 저희 집안 이야기를 앞뒤 순서없이 풀어간 작품이지요.
중복되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왜냐면 그 때 그 때 떠오르는대로 쓰고 그렸기 때문입니다.
책을 내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자같은 것이 어찌 감히 책을 내겠단 말입니까.
한데 조금씩 오랜 세월 쌓이다보니 책도 내게 되었고 상도 받게 되었습니다.
 
<<정가네소사>>를 그리기 전까지는 외가집 이야기를 한번도 들은 적 없습니다.
옛날 이야기만 주구장창 늘어놓는 아버지와 달리
어머니는 한 번도 지나간 이야기를 하지 않으셨지요.
고생한 이야기를 하기 싫었던 거지요.
전 30대 중후반까지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계셨다는 사실조차 몰랐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외할머니 얘길 듣고 적지않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분의 삶이 너무나 가여웠습니다.
그 분의 혼을 조금이라도 위로해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외할머니의 사연을 조금씩 그리게 되었지요.
본격적인 이야기는 그리지 못했지만 이 분 이야기를 그리며 이상적인 여성상을 품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책에 사인을 하면 꼭 외할머니의 모습을
그리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2백번은 그리지 않나 싶네요.
더 그렸으려나?
 
사람들을 만나 집안 얘길 들으면 정말 드라마틱하단 생각을 많이 합니다.
소설로 쓰거나 만화로 그리면 얼마나 재밌을까 싶은데 그런 이는 아주 드뭅니다.
사실 그에 비해 제 집안 이야기는 빈약합니다.
아버지는 했던 얘길 또하고 또 하셔서 새로울 것이 없었고 어머니는 옛날 얘길 하는 걸
싫어하셨습니다.
일기나 회고록을 남긴 건 더더욱 아니고요.
그럼에도 뭔가 이야기를 해야했기에 이야기꺼리가
있나 불을 키며 찾아서 그렸지요.
그러니까 <<정가네소사>>는 할 이야기가 전혀 없는 작가가 뭐라도 이야기를 해야했기에
궁여지책으로 그린 작품입니다.
말하자면 외할머니는 제게 구원의 여성상입니다.
외할머니로 인해 책을 내게 되었고 작가 소리도 듣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이 글은 누가 책 사인을 하는데 왜 꼭 여자를 그리냐 묻기에 하는 대답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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