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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한기형 3 (수박)

by 만선생~ 2024. 7. 14.

 
 
 
나주에 사는 한기형네 집에서 신세를 지곤 한다.
짧게는 이삼일 길게는 일주일 이상 머물다 간다.
이혼남인 한기형이 쓰고 있는 공간은 오로지 내 차지가 된다.
한기형이 없었다면 나주에 갈 일도 없으리라.
덕분에 나주 사람들과 인연을 맺고 있다.
한기형은 한국에 와 일을 하는 태국노동자들에게 세를 주었다.
2층을 통째로 내주는데 세가 한달에 30만원이다.
내년부터는 40만원을 받겠다는데 그래도 싸다.
내 생각엔 50만원을 받아도 될 것 같다.
한기형은 화물차 운전을 한다.
대출 이자 내야지 아이들 양육비 보내야지 사는게 정말 빠듯하다.
여행도 못가고 공연같은 건 더더욱 볼 수없는 다람쥐 쳇바퀴같은 생활이다.
이혼하기 전에도 팍팍했지만 이혼을 하고 난 뒤에도 팍팍한 건 마찬가지다.
지난 주 한기형 집에서 머물고 있을 때다.
하루는 일 나가 있는 한기형에게서 전화가 왔다.
마루에 수박이 있는데 태국 애들에게 좀 갖다 주라는 거다.
수박이 얼마냐 물으니 12,000원이란다.
계산을 해보니 수박을 주면 월세가 28만8천원이 되는 것이었다.
나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고 했다.
자기네가 먹고 싶으면 사먹지 않겠냐면서.
"그런가?"
한기형은 내 말에 수긍이 갔는지 더 이상 수박 갖다주란 소릴 안했다.
수박은 나와 한기형 둘이 오붓하게 먹으면 되었다.
좀 더 나은 삶을 위해 이국에 온 사람들.
수입만 보자면 태국 애들 벌이가 도리어 한기형보다 나을 듯 했다.
한기형은 특별한 일이 없는한 다람쥐 쳇바퀴같은 생활이 이어질 것이다.
그에 반해 그네들은 한국에서 몇년 고생하고 돌아가면 이전과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된다.
모두가 부러워해 마지않는 삶이다.
집도 사고 땅도 사고 결혼도 하고.
그 순간을 위해 고생을 마다하지 않는 것이다.
나주는 배로 유명한 곳.
요새 배봉지 씌우는 철이라서 늦게까지 일을 한다.
하루는 태국인들을 고용하고 농장주가 찾아와 인사를 하였다.
자기 애들 잘 부탁한다고.
봉지를 속이는 일 없이 일을 잘한단다.
한기형 말로도 태국애들이 착하다고 했다.
있는듯 없는 듯 산다고.
문제는 다음날이었다.
한기형이 기어이 수박을 태국 애들에게 건네주는 것이었다.
월세가 30만원에서 28만 8천원으로 줄어드는 순간이었다.
태국 애들은 고맙단 말을 안하였다.
표현력이 부족해서인지 아니면 당연한 일로 여기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사람이 너무 좋아도 문제다.
선한 마음을 이용해먹으려는 사람들이 꼭 나타난다.
그로인해 한기형은 몇차례 곤란을 겪었다.
이 쯤되면 사람이 달라질법도 한데 한기형은 그대로다.
사람의 성정이란 그리 쉽게 변하는 게 아닌 것 같다.
30년 동안 알아온 사람.
한기형이 잘됐으면 좋겠다.
당구대 쓰리쿠션처럼 따따불로 잘됐으면 좋겠다.
마음에 두고있는 은정씨가 어느날 갑자기 버선발로 찾아와 살림을 살자고 한다던지 아니면
복권에 당첨 된다던지. 
그리 되었으면 좋겠다.

20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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