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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려온 글

베를린 천사의 시

by 만선생~ 2024. 8. 28.

 

아이가 아이였을 때...
질문의 연속이었다.
왜 나는 나이고 네가 아닐까
왜 난 거기에 없고 여기에 있을까
왜 나는 나이고 네가 아닐까
왜 나는 여기에 있고 저기에는 없을까
시간은 언제 시작되었고 우주의 끝은 어디일까
태양 아래 살고 있는 것이 내가 보고 듣는 모든 것이
모였다 흩어지는 구름 조각은 아닐까
악마는 존재하는지, 악마인 사람이 정말 있는 것인지
내가 내가 되기 전에는 대체 무엇이었을까
지금의 나는 어떻게 나일까
과거엔 존재하지 않았고 미래에도 존재하지 않는
다만 나일 뿐인데 그것이 나일 수 있을까
옛날에는 인간이 아름답게 보였지만 지금은 그렇지가 않다
옛날에는 천국이 확실하게 보였지만 지금은 상상만 한다
허무 따위는 생각 안 했지만 지금은 허무에 눌려 있다
과거엔 존재하지 않았고 미래에도 존재하지 않는
다만 나일 뿐인데 그것이 나일 수 있을까
--피터 한트케 <아이의 노래> 중에서

 

오래 전 봤던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
감독 이름이 빔 벤더슨이던가?
부에나비쇼설클럽을 연출한 그 감독...
헐리우드 영화에 길들여진 탓인지 내용은 그닥 재밌지도
그래서 기억나지도 않는데 나래이션만큼은 또렷히 기억한다.
왜냐면 비디오 플레이어를 정지시켜가며 나래이션을 노트에 적었으니까.
'왜 나는 나이고 네가 아닐까?'
나는 나임을 한번도 의심하지 않던 나에게 내가 너가 왜 아닐까
라는 물음은 확실히 뒷통수를 치는 것이었다.
이런 물음을 던질 수 있는 사람!
감독이 자연 우러러보일 수밖에 없었다.
헌데 알고보니 유명시인의 시였구나.
피터 한트케가 누군지 모르지만 알만한 사람은 다아는 그런 시인인가 보다.
어쨌든 천녀유혼에서 늑대에게 쫓기던 영채신(장국영)이 정신없이 읊던 시가 이백의

장진주사였다는 걸 알았던 것만큼이나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