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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한림면 보도연맹 사건에 '한국판 쉰들러' (퍼옴)

by 만선생~ 2024. 9. 5.

김해 한림면 보도연맹 사건에 '한국판 쉰들러'

2009. 2. 23.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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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당시 면장 최대성씨 숨은 노력으로 희생자 거의 안나와

한국전쟁 당시 인민군에 동조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272명이 살해된 '경남 김해 국민보도연맹 사건'에서 한림면은 양심적 인사의 숨은 노력으로 인해 희생자가 거의 나오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김해 보도연맹사건에서 모두 272명이 희생됐으나 한림면은 희생자가 거의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고 23일 밝혔다.

 

진실화해위는 김해보도연맹유족회에 보낸 진실규명결정서에서 한림면을 '희생을 줄인 사례'라고 밝혔다. 다른 지역과 달리 한림면(당시 이북면)의 희생자가 적은 것은 당시 면장인 최대성씨(1906년생·작고)의 숨은 노력 때문인 것으로 파악했다.

한국전쟁 직후 한림면 보도연맹원들은 한림면 금융조합창고에 구금됐으며 대한청년단 단원과 김해경찰서 한림지서 경찰들로부터 살해될 위기에 처해 있었다. 최 면장은 대한청년단 단장을 맡고 있던 동생 대홍씨를 통해 경찰을 설득했다. 구금된 사람 중 젊은 사람들은 대한청년단에 가입시켜 풀려나게 했고, 나이가 든 사람들은 창고 뒷구멍으로 탈출시켰다. 구금된 한림면 보도연맹원들은 모두 살아날 수 있었다.

실제 진실화해위가 김해 보도연맹 희생자로 확인한 272명 중 한림면 거주자는 모두 4명에 불과했다. 희생된 4명은 CIC(방첩대)에 직접 연행돼 살해된 사람들이었다.

영남 기호학파의 마지막 유학자인 이우섭 선생(2007년 작고)은 최 면장이 작고한 1978년 이 같은 사실을 묘비에 기록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1949년 당시 김해시 안동(당시 김해읍 안동)에서도 김해경찰서 불암지서 주임이었던 김모씨가 자신이 관할하던 안동에서 보도연맹이 조직되자 자신이 책임진다며 보도연맹 가입을 적극 만류해 한국전쟁 이후 발생한 보도연맹 사건에서 희생된 안동 주민은 한 명도 없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 김해 | 권기정기자 kwon@kyunghyang.com >- 대한민국 희망언론! 경향신문, 구독신청(http://smile.khan.co.kr) -ⓒ 경향신문 & 경향닷컴(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경향닷컴은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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