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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대학 사회의 일면

by 만선생~ 2024. 8. 28.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삽화작업을 하면서 본 대학사회의 일면.
순천시에선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를 열며 두 곳에 용역을 발주했다.
공모를 통해 선정된 곳은 서울의 한 기획사와 순천소재의 모대학.
이들의 임무는 정원박람회에 필요한 콘텐츠를 만드는 것으로
나는 기획사측으로부터 삽화를 발주받아 기획사 사람들과 1박2일
일정으로 순천에 내려갔던 것이다.
개장을 몇 개월 앞둔 시점에서 이루어지는 현장 답사.
한 사람이 내게 인사를 하며 명함을 건넸다.
모대학 국문과 교수였다.
그는 나와는 동갑내기로 현장을 거닐면서 이동하는 차안에서 또 뒷풀이 자리에서 늘 이야기를 주도했다.
자신은 지방 일간지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했는데 중앙일간지를 통해
등단한 작가에 비해 낮게 평가되는 경향이 있다는 둥 어떻다는 둥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의 말한마디에 웃음보를 터트리는 사람들...
좌중을 들었다 놨다라는 말은 그에게 꼭 어울리는 표현이었다.
하루 종일 같이 있어도 심심하지 않을 사람...
나는 그의 능력이 부러웠다.
그의 주도 하에 이야기가 한 참 무르익고 있을 때였다.
한 사람이 문을 열고 들어오자 사람들은 일제히 몸을 일으키며 그를 맞았다.
뒤에 들으니 그는 아무개 국문과 교수로 모대학에서 서열이 가장 높다고 했다.
시로 명망이 높은 아무개 교수도 학교에서 그의 파워를 당해낼 수 없다고 한다.
한마디로 학교에서 가장 먼저 터를 닦은 터줏대감이란 것이었다.
알고보니 순천시에서 받은 용역도 그가 나누어주는 듯 했다.
이제 대화는 권력서열 1위의 교수에게로 옮겨갔고 신춘문예 출신의
교수는 그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잠잠했다.
말이라고 해봤자 어쩌다 작은 목소리로 한두마디씩 꺼내는 게 전부였다.
권력서열에 따른 술자리 모습의 변화...
씁쓸했다.
모르긴 해도 우리사회에서 가장 지적인 인간들이 모여있는 곳은 대학일 것이다.
대학에서 가장 많은 지적 콘텐츠를 생산하고 유통하며 소비한다.
그래서 교수사회는 그 사회의 지성을 가늠하는 척도가 된다.
하지만 내가 잠시 엿본 교수사회의 모습은 여느 사회와 전혀 다르지 않았다.
지방일간지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나와 동갑내기 교수...
아마도 그는 지금도 술자리에 좌중을 쥐락펴락하며 입담을 과시할 것이다.
단 조건이 있다.
서열 1위의 교수가 나타날 때까지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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