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어렴풋하게 남아있는 기억이 있다.
백양사 천왕문을 지나며 보았던 사천왕상이다.
어마어마한 크기의 기괴하기 짝이 없는 조각상을 보며 소름이 돋았다.
태어나 처음으로 느낀 공포였다.
렇그게 절은 내게 무서운 곳으로 각인되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헤르만 헤세의 소설 싯타르타를 읽었다.
문장 하나하나가 잠자고 있던 나의 뇌세포를 건드렸다.
자아를 찾아 고행을 떠나고 세존을 만나 깨달음을 얻는 과정이 그렇게
흥미로울 수가 없었다.
이후 불교가 친근하게 느껴졌다.
더하여 불교의 상징들도 하나씩 알게 되었다.
그토록 무서웠던 사천왕상은 불법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든든했다.
그래서 절에 갈 때마다 가장 먼저 보는 것은 사천왕상이다.
사천왕상이 밋밋하면 시큰둥한 기분으로 경내를 돌아보고
사천왕상이 멋지면 비로소 절다운 절에 왔다는 기분이 들었다.
지난 8월엔 고창 선운사 천왕문에서 사천왕상을 보았다.
일본 나라현 동대사 인왕문의 금강역사는 지금까지 보아왔던
사천왕상을 훌쩍 뛰어넘었다.
규모에서도 그렇고 조형미에서도 그랬다.
같은 시기 세워진 경주 석굴암의 금강역사상을 닮아 있다.
석굴암의 금강역사는 화강암에 새긴 부조인데 반해 동대사 금강역사는 나무 조각이다.
백제 출신 신라의 기술자들이 건너가 절을 지었다고 하니 닮을 수밖에 없었을 거다.
놀라운 건 당시 일본의 경제력이다.
어마어마한 인력과 자원을 동원했다.
한마디로 국가적 사업이었다.
금강역사상엔 흔들리는 나라를 부처의 힘으로 지키겠다는 권력자의 결의가
오롯이 새겨져 있다.
2017.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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