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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보트 킹 2005년 만화행사 전시를 위해 그렸던 그림. 이제 보니 화면처리가 참으로 미숙했다. 죽일 건 죽이고 살릴 건 살려야했는데... 그나저나 고유성 선생이 그린 로보트킹의 키는 얼마나 될까? 2023. 12. 2.
못난 과거도 내 모습 옛사람들을 만나면 불편한 것이 나의 찌질한모습을 다 기억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현재의 모습으로 날 평가하지 않고 옛 모습으로 날 평가한다. 일단 용연이 작품 당연 후지지 하면서 눈을 내리깔고 본다. 경우에 따라선 책을 줘도 읽을 생각조차 안한다. 옛날의 내가 아니라고 아무리 항변해도 돌아오는 것은 옛날의 기억을 다시 소환할 뿐이다. "너 옛날에 책 별로 안읽었잖아. " "너 옛날에 글은 전혀 안썼잖아. " "너 옛날엔 사람들도 안만났잖아." 어찌하랴. . 그렇다고 그들의 기억을 제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미숙했던 나의 과거는 사라지지 않는다. 아니 오늘의 모습은 미숙했던 나의 과거를 통해 쌓아올린 것이다. 사실 지금도 부족하고 앞으로도 부족할 것이다. 최대한 나를 근사하게 보이려 애쓰겠지만 찌질함이 어.. 2023. 12. 2.
항마촉지인 降魔觸地印 만화수업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는 부처님을 뵈었다.항마촉지인 뿐 아니라 전법륜인 등의 자세를 하고 있었는데 정확히는 모르겠다.부처님은 탑의 하단부 네 면에 부조 새겨져있다.화강암의 질감이 느껴진다.설명문을 읽으니 탑양식으로 보아 고려초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한없이 부드러운 자태에 온화한 미소.중생구제를 위해 법력을 펼치시는 부처님의 모습에서 마음의 위안을 얻었다.단순한 조형물이 아니라 내 마음을 비추는 잔잔한 물결이었다.무수히 많은 돌가루를 맞으며 정을 두드리던 고려 석공의 마음은 어땠을까?모르긴해도 부처님의 마음에 가장 가까이 다가갔을 것 같다.어쩌면 부처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저토록 자애로운 부처의 모습을 조각해 낼 수 있단 말인가!부처님이 새겨진 .. 2023. 12. 2.
이정구 삼각산기 2015년 스토리 테마파크 '담談"에 그린 삽화. 1603년 9월, 이정구와 벗들이 북한산 계곡에 악공들을 대동하여 신명나게 놀았다. 얼마나 거하게 놀았는지 사대문 안에 있는 집으로 돌아오니 자정을 훨씬 넘어섰다고 한다. 도도한 흥취를 어떻게하면 그려낼까? 화면을 이리저리 구성해봤지만 생각처럼 되지가 않았다. 특히 물을 표현하는 게 힘들었다. 그나마 수채화가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컴퓨터라 수정이 자유로웠다. 디지털 기술을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디지털 신세를 질 수밖에 없는 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숙명이 아닐까 싶다. *산수, 화조, 인물...못 그리는 게 없는 조선의 화가 김홍도. 풍속화로 더 유명한 그는 넘사벽 천재가 맞다. 삽화를 그려보니 알겠다. 2023. 12. 1.
가야산 유록기 2015년 국학진흥원으로부터 30장 정도의 그림을 의뢰받아 그렸었다. 스토리테마 파크 '담談"에 올라와 있는 선인들의 일기 가운데 인상적인 장면들을 뽑아 그리는 것이었다. 유학자들이 쓴 글이라 딱딱하고 재미없을 줄 알았는데 은근 재밌는 내용이 많았다. 군자를 삶의 목표로 삼는 유학자들이지만 사람은 똑같다. 기대했던 누군가가 나를 소홀히 대하면 서운하고 누군가 나의 공을 가로채면 화나고 누군가 나보다 잘나가면 샘나고... 사람이란 그러한 존재들이다. 그 때 그린 그림 대부분은 폴더에서 꺼내질 않는다. 볼품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대 이상으로 그림이 잘 나온 것들도 있다. 김명범의 가야산 유록기를 읽고 그린 가야산 그림이 그렇다. 최치원이 몸을 숨겼다는 가야산. 해인사엔 가봤지만 산을 오르진 못했다. 2023. 12. 1.
영화 "서울의 봄" 영화 "서울의 봄" 극장에 가 입소문으로 흥행을 이어가고 있는"서울의 봄"을 봤다. 입소문이 날만했다. 영화를 보는 내내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었다. 김오랑 소령이 쿠데타 군에 맞서 싸우다 죽는 장면에선 눈물이 나왔다. 남편이 죽은 뒤 눈이 멀어 실족사했다는 부인의 이야기를 알고 있기에 가슴이 더 미어졌다. 수도방위사령관 장태완 소장과 특전사령관 정병주 소장은 살아남았다. 하지만 이후 삶은 신산하기 이를데 없었다. 군인의 본분을 다하기 위해 쿠데타 세력과 맞서 싸운 댓가는 정말이지 혹독했다. 그에 반해 전두환을 비롯 쿠데타에 참여했던 세력이 얼마나 부귀영화를 누렸는지 우린 역사를 통해 잘 알고 있다. 놈들과 그 자녀들은 아직도 호의호식하며 잘살아가고 있다. 피가 끓고도 남을 일이다. 배우는 배역에 따라.. 2023. 12. 1.
서울 용두동 골목길 어제 용두동 골목길에서 본 한옥.1980년 초 용두동에 사는 작은 할아버지 댁에 갔는데 이런 기와집이었다.작은 할아버지와 작은 할머니 그리고 삼촌들이 살던 집.우리보다 조금 일찍 서울에 올라와 세들어 살았다.작은 할아버지는 빡빡머리에 한복을 입으셨다.댓님을 매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어른 앞에선 무릎을 꿇고 있어야하는 줄 알고무릎을 꿇었더니 다리가 저려 일어서기가 힘들었다.반면 육촌 동생들은 편안하게 양반다리를 하고 있었다.곳간에서 인심이 나온다고 했다.사는게 넉넉치 않으니 우리를 살갑게 대하진 않았다.그래서 명절날이 아니면 가지를 않았다.그래도 한옥에서 잠시나마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건 다행이라 생각한다.한국인으로 살면서 한옥을 경험해보지 못했다면 이 또한 불행이 아닐까 싶다.작은 할아버지가 살.. 2023. 11. 30.
서울 약령시장 앞길 어제는 시내에 볼일이 있어 나갔다가 제기역 앞길을 걸었다.그 유명한 약령시장 앞이다.어린시절 제기동에 살았건만 방향이 헷갈려 장사하는 분에게 물었다."제기역이 이쪽 맞나요?""네"거리는 경천동지할만큼 달라져 있었다.이렇게 사람이 많을 줄 꿈에도 몰랐다.어릴 때 제기역에서 미도파 백화점에 이르는 길은 한산했다.시장이 형성돼 있지 않았다.약령시장과 경동시장의 외곽이었다.미도파 백화점도 수지가 맞지 않아 문을 닫았다.그런데 이게 왠일인가?가게는 제기역 안까지 이어져 있었고 역사엔 사람이 많았다.예전과 비할바 아니었다.과연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1980년 우리집은 제기동 골목길 단칸방에 한달을 살고 가까운 산동네로 이사를 갔다.친구집에 놀러가려 몇개월만에 그 골목기로 와보니 한산하던 골목길은 시장이 돼.. 2023. 11. 30.
베란다 풍경 잎을 다 떨군 산초나무와 노랗게 물든 머루나무. 베란다에서 가을이 끝나가고 있음을 느낀다. 비가 내린 탓에 빨래가 마르지 않았다. 2023. 11.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