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2학년 때 반에서 68등을 했다.
70명 가운데 68등이니 간신히 꼴등을 면한 셈인데 꼴등이나 다름없었다.
69등과 70등은 운동부원이었기 때문이다.
알잖나?
운동부원들 학교 수업 거의 다 빼먹는다는 거.
도무지 학교수업에 흥미를 가질 수 없었고 또 공부를 해야 한다는 목적의식이 없었다.
학교 생활은 지옥 그 자체였다.
수업 내내 멍하게 칠판만 바라보았고 공책에다 낙서를 일삼았다.
낙서 역시 어떤 목적을 가지고 하는 게 아니었으므로 몇 분
끄적이다 보면 이내 곧 지겨워졌다.
기다리는 것은 언제나 학교 수업을 파하는 종소리.
하지만 다음날 역시 학교를 가야했고 그 다음날 역시 학교를 가야했다.
숙제를 해가는 날도 없었다.
당연 숙제 검사에 걸려 매일 같이 매를 맞았고 매를 맞고 나면 열패감에 시달렸다.
나 왜 이렇게 살아야 하지?
학교란 감옥을 벗어나고 싶었다.
아이들을 따라 본드도 흡입해보고 싶었고 여자 아이와도 자고 싶었다.
세상을 떠돌며 이제까지 경험해보지 못했던 것들을 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어떤 아이도 본드를 함께 흡입하자 말 건네지 않았고
아무도 가출하자고 손을 잡지 않았다.
그러기엔 나는 너무나 온순한 아이였다.
학교를 박차고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저 지옥과도 같은 학교 생활을 견디며 졸업을 기다리는 게 최선의 방법이었다.
초중고. 12년 세월을 버티고 마침내 학교를 벗어났다.
하지만 나같이 가난한 집에 공부 못하고 사회성 부족한 아이에게 세상은 거대한 벽이었다.
세상은 어떤 역할도 허락하지 않았고
쥐꼬리만한 소득을 얻기 위해선 나의 온 시간과 에너지를 바쳐야 했다.
산업혁명 시대의 노동자처럼 오로지 일용할 양식을 얻기 위해 하루하루를 견디어야 했다.
돌아보니 공부야말로 세상을 살기 위해 취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절대적이진 않지만 노력대비 효과를 최대한 보장해주는 것은 내가 그토록 싫어하던 공부였다.
운동을 해서 성공할 확률보다 공부를 해 성공할 확률은 비할 데 없이 높다.
그리고 성장기 체득된 학습능력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학교 공부가 전부는 아니지만 세상을 살아가는데 큰 힘이
된다는 것 부정할 수 없다.
일단 간판을 딸 수 있지 않은가!
지천명.
공자는 나이 50에 하늘의 뜻을 알았다고 했다.
공부를 안해서인지 지천명이 가까워지는 난 하늘의 뜻을 알지 못한다.
이순인 60이 되어서도 고희인 70이 되어서도 하늘의 뜻을 알 것 같지가 않다.
다만 나는 나와 주변인들의 삶을 좀 더 객관적으로 돌아보는 눈이 생겼다고 자부한다.
공부를 해서가 아니라 세월이 자연스레 그러한 능력을 갖게 한 것이다.
나는 그해 나와 같이 68등을 했던 전국의 아이들이 어떠한 삶을 살았을까 종종 생각한다 .
할 수만 있다면 각각의 삶의 궤적을 쫓아 통계를 내고 싶다.
경제적 수준, 삶의 만족도. .
아마 높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삶을 통해 사회적 의미를 도출해 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68등이라 불행한 삶을 살아가는 사회는 지옥이다.
68등을 해도 불행해지지 않고 삶의 의미를 찾아갈 수 있는 사회.
기성세대는 그런 사회를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
2016.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