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에세이/생활

고졸

by 만선생~ 2024. 10. 16.
 
 
언젠가 울엄니가 말씀하셨다.
내가 인문계 고등학교 대신 공업고등학교에 들어가길 바랬다고.
그랬다.
노점으로 생계를 꾸려가던 우리 집은 대학을 보낼 형편이 안되었다.
무엇보다 나는 학습지진아였다.
턱걸이로 겨우겨우 인문계 고등학교에 들어갔으나 공부는 뒷전이었다.
학업에 흥미가 없었다.
서울에 있는 4년제 대학은 쳐다볼 수도 없었고 2년제 대학도 쉽지 않았다.
굳이 대학에 들어갈 마음도 없었다.
그렇게 나는 최종학력 고졸이 되었다.
유유상종이라고 어울리는 친구들도 나와 성적이 비슷했다.
4년제 대학에 들어간 친구는 한 둘 있을까 말까였다.
소중한 친구들이지만 만나면 뭔가 허전했다.
나누는 이야기들이 지극히 개인적인 것에 머물렀다.
한 예로 나와 가장 친한 친구는 이른바 운동권을 싫어하였다.
본질을 보지 못한 채 겉으로 드러나는 폭력성에만 주목하였다.
쓸데없이 데모를 하여 사회를 어지럽힌다는 것이었다.
친구의 말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굳이 설득할 생각도 없었다.
설득하고자 해도 말빨이 되지 않았다.
지적 자극을 주지 않는 친구들...
나는 종종 지적 컴플렉스에 시달렸다.
눈이 좋지 않음에도 지적 허기를 채우기 위해 책을 읽었다.
시덥잖은 책들도 많았지만 책을 통해 사회를 바라보는 눈을 조금은 키울 수 있었다.
아니 실제는 그러지않는데 그렇다고 스스로 생각했다.
내 인생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겠다.
지적 컴플렉스에서 벗어나기 위한 기나긴 여정이었다고.
어찌어찌 나는 내 이름으로 된 몇 권의 책을 냈다.
앞으로 내게 될 몇 권 분량의 원고가 컴퓨터 하드에 저장돼 있다.
처음엔 작가라는 호칭이 낯설었으나 지금은 자연스럽다.
사람들이 봐주건 봐주지 않건 나는 꾸준히 작업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2023.8.22

'에세이 > 생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법륜 스님님  (3) 2024.10.18
성대모사  (2) 2024.10.17
68등  (2) 2024.10.16
약한 고리  (0) 2024.10.16
영어 선생님  (0) 2024.1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