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이 있는 만화들은 이상하게 재미가 없다.
그 것도 원작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소설 원작은 더욱 그렇다.
소설의 글맛과 만화의 흡입력이 합처져 시너지 효과를 내기보다
서로의 장점을 깎아내리면서 이도저도 아니게 되기 때문이다.
특히 원작에 가까이 다가가려 하면 할수록 더욱 재미가 없다.
이 때 만화가는 재창조가 아닌 글을 설명해주는 삽화가로 전락한다.
소설과 만화는 다르다.
만화와 소설도 다르다.
태생이 다르고 장르적 특성이 다르다.
일례로 소설을 각색한 영화들이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한 예는 많지 않다.
원작소설에 가까이 다가간 영화일수록 관객수가 적다.
소설과 영화의 문법이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이러한 장르적 특성을 무시한 채 소설을 만화로
옮겼을 때 작가는 독자들로부터 외면을 받는다.
원작의 후광으로 책을 구입했다 해도 금세 책장을 덮고 말 것이다.
입소문에 의한 판매는 기대할 수 없다.
물론 원작소설을 둔 만화 모두가 그렇다는 얘기는 아니다.
성공을 거둔 만화가 여럿 있었다.
다만 그들 만화는 글에 예속되지 않았다.
자기 해석이 있었고 자기식대로 풀어나갔다.
나아가 원작에 없는 인물을 창조해내기까지 한다.
어쩌면 원작소설을 둔 만화가 성공하기 위한 절대공식은 원작과 최대한 멀어지는 것은 아닐까?
소설도 영화도 연극도 만화도 티브이 드라마도 재미있어야 본다.
이른바 세계 명작이라 일컫는 작품들도 당대의 베스트셀러였다.
그만큼 재미 있었단 얘기다.
사람들은 누구나 재미를 추구한다.
그래서 재미없는 일을 일부러 하는 사람은 없다.
하물며 흡입력이 소설과는 비교가 안되는 만화를 보는데 있어서랴...
오리지널 시나리오로 만든 영화가 원작이 있는 영화보다 더 재밌듯
오리지널 스토리 만화가 소설에 기댄 만화보다 훨씬 더 재밌다.
이는 결코 짧다고만 할 수 없는 세계 만화역사가 증명한다.
우리 만화역사를 보더라도 80년대 초 창간한 만화잡지 보물섬에서 소설을 원작으로 한 만화들은
별 반향없이 뭍혔지만 오리지널 스토리 만화들은 지금까지 독자들 가슴에 남아 별이 되었다.
한 사람의 만화인으로 훌륭한 소설을 보면 이걸 만화로 그리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곤한다.
한번도 실행에 옮기지 않았지만 하나의 장르가 또 다른 장르로
변화하는 모습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흥미롭다.
만약 다른 장르의 창작물을 만화로 옮길 기회가 온다면 어떤 마음으로 접근해야하는 할까?
실행여부는 알 수없지만 원칙을 정해두면 좋을 것 같다.
첫째 원작에 기대지 않는다.
둘째 원작에 기대더라도 자기 식으로 풀어나간다.
오늘 원작이 있는 만화를 보며 든 생각이다.
2014.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