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규
1979년 10월27일 아침. 박정희 대통령 사망소식에 깜짝놀랐다.
전쟁이 일어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됐다.
나는 그때까지 대통령은 박정희 혼자 하는 것인 줄 알았다.
태어났을 때부터 아니 훨씬 이전부터 줄곧 대통령 노릇을 해왔기 때문이다.
대통령을 쏜 사람은 중앙정보부장인 김재규라고 했다.
충복이었던 자가 어느날 갑자기 주군의 가슴에 총부리를 겨누었던 것이다.
김재규를 독재자를 처단한 의인으로 평가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김재규는 독재에 부역한 사람이다.
박정희 아래에서 출세가도를 달렸고 막강한 권한을 지닌 중앙정보부장이 되었다.
실질적 권력은 국무총리보다 더 세다.
김재규는 여느 군바리들과는 다른 면모를 지녔다고 한다.
야당인사에 대한 존중이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독재에 부역한 사실이 지워지지 않는다.
의인으로 평가하긴 무리가 있다.
그나저나 깜짝 놀란 것이 내가 김재규보다 오래살고 있다는 점이다.
세종대왕이나 이순신 장군보다 오래살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김재규보다 오래 살고 있는 줄은 몰랐다.
법정에 서 재판을 받고 있는 김재규 사진을 보니 젊다.
무엇보다 머리숱이 풍성한데다 검기까지 하다.
정수리가 많이 빈 나로선 부러울 수밖에 없다.
90년대 어느 신문을 통해 공개된 사진은 충격이었다.
김재규는 수의를 입고 머리는 천으로 감싼채 손목과 발목은 포승줄에 묶여 있었다.
이제 막 사형집행이 끝나 몸이 축 늘어져 움직일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영영 세상을 떠나고 만 것이다.
형장에 선 김재규의 심정은 어땠을까?
두려웠을 것이다.
아무리 담대한 사람이라도 죽음 앞에 초연할 수 없다.
비록 독재에 부역했으나 한가닥 양심이 남아있던 사람.
그의 명복을 빈다.